![]() 나디아 블랑제 1925년 사진 |
![]() 가브리엘 포레와 함께 한 나디아 블랑제 |
나디아 블랑제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르네스트 블랑제(Ernest Boulanger, 1815 ~1900)는 1835년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수상한 작곡가이자 파리 음악원의 교수였고, 어머니 라이사 미쉔츠카(Raissa Myshetskaya, 1856~1935)는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의 성악가였다. 러시아 정교회 사제 집안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유학 온 라이사는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지적 깊이와 영적인 감수성을 지닌 인물로, 자녀들에게 엄격하면서도 철학적인 사고를 심어주었다. 집 안에서는 늘 음악이 흐르고, 연주회가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한 나디아 블랑제는 열 살 무렵 이미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 폴 비두(Paul Vidal, 1863~1931), 루이 비에른(Louis Vierne, 1870~1937), 샤를 마리 비도르(Charles-Marie Widor, 1844~1937) 같은 스승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으며 오르간, 대위법, 푸가, 지휘 등을 두루 공부했다. 포레는 그녀에게 감정의 절제와 구조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비도르에게 오르간 연주법을 배웠다. 이 스승들에게서 배운 것들이 훗날 블랑제 교육의 기둥이 되었고, 제자들에게 ‘기술은 영혼을 담기 위한 그릇’이라는 그녀만의 철학으로 재탄생되어 기술보다 ‘사유하는 음악’을 가르쳤고, 블랑제는 그 유산을 자기 제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작곡가로서의 재능은 제한적이라 판단했다. 대신, 요절한 동생 릴리 블랑제(Lili Boulanger, 1893~1918)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하고, 그녀의 작품 세계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헌신했다. 스스로를 ‘교육자’로 규정하고, 작곡보다 사람을 다듬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 지휘자로서 나디아 블랑제 |
그녀의 수업은 단지 작곡 기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아니었다. 고전 대가들의 악보를 바탕으로 형식, 구조, 리듬, 선율, 하모니를 해부하듯 분석하게 하되, 결국에는 “너만의 음악을 찾아라”는 주문으로 귀결되었다. 바흐의 푸가 한 곡을 한 달 이상 분석시키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한 마디의 화성만 가지고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는 흔히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친다”라고 했다. 음악은 표현의 수단일 뿐, 궁극적으로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하는 인간의 언어라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었다.
![]() 지휘자로서 나디아 블랑제 |
블랑제의 제자 명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전이라 할 만큼 방대하고 다양하다.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 1900~1990)는 미국 현대음악의 얼굴이 되었고, 필립 글래스(Philip Morris Glass, 1937~ )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가 되었다. 퀸시 존스(Quincy Delight Jones, 1933~2024)는 재즈와 팝, 영화음악까지 아우르는 프로듀서로 세계를 움직였으며, 피아졸라(Astor Pantaleon Piazzolla, 1921~1992)는 클래식의 바탕 위에 아르헨티나 탱고를 입혀 독립된 하나의 예술 장르로 완성했다. 이 외에도 이고르 마르케비치(Igor Markevitch, 1912~1983),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존 엘리엇 가디너(Sir John Eliot Gardiner, 1943~ ) 같은 지휘자들은 오늘날 고전음악 해석의 기준을 세웠다.
특히 아론 코플랜드는 1921년부터 그녀의 수업을 들으며 고전 양식과 미국 민속음악의 조화를 실험했고, 결과적으로 애팔래치아의 봄(Appalachian Spring), 링컨의 초상(Lincoln Portrait) 같은 작품을 남기며 ‘미국적인 음악’의 뿌리를 세웠다. 필립 글래스는 “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기술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 릴리 블랑제(오른쪽)와 나디아 블랑제(왼쪽) |
1930년대, 여성에게는 지휘자의 자리가 거의 허락되지 않던 시절, 나디아 블랑제는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BBC 심포니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1938년 그녀는 미국 주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첫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단지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넘어, 그 시대에 여성이 음악의 권위를 가질 수 있음을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녀는 또한 바흐, 모차르트, 브람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 깊은 통찰을 보였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동생 릴리의 작품을 악보로 정리하고 출판하고, 직접 연주와 해설로 알리면서 여성 작곡가의 존재를 역사에 남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나디아 블랑제와 그녀의 제자들 |
나디아 블랑제는 단호하고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깊은 통찰과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녀의 어록은 오늘날 예술가들뿐 아니라, 교육자와 리더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형식이 없는 감정은 혼란이고, 감정 없는 형식은 죽음이다.”
“Emotion without form is chaos; form without emotion is death.”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율해야 한다.”
“To know what you are, you have to tune yourself constantly.”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을 돕는 사람이다.”
“I am not a teacher, but an awakener.”
그녀는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소리’를 찾게 했고, 때로는 침묵을 통해 배움을 유도했다.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고백이며, 창작은 흉내가 아니라 고독한 선택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스승의날에 떠올리는 참교육
오늘날 필립 글래스의 투명하고 반복적인 사운드, 바렌보임의 대담한 해석, 퀸시 존스의 세련된 감각은 모두 다른 색을 띠지만, 그 근간에는 한 사람의 흔적이 있다. 제자들의 음악을 통해 시대를 가르친 사람, 바로 나디아 블랑제이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우리는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교육이란 가능성을 발견해주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것임을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적과 결과 중심의 교육에 머물러 있지만, 블랑제가 그랬듯,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목소리를 듣고 그 잠재력을 끝까지 지켜봐주는 교육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예술이 그렇듯, 교육도 결국은 ‘존재를 깨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