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향적 무곡 중 1악장 시작. |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동시에 하며 많은 피아노 명곡을 남겼고, 특히 C#단조 전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대표적인 출세작으로 그가 유럽과 미국의 연주 여행을 통해 작곡가로서 입지를 굳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7년 러시아는 2월 혁명이 발생 되었다. 당시 많은 지식인과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하고, 재산까지 몰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사회 문화까지 정치적으로 억압받게 되자 많은 예술가들이 조국을 떠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들 중 라흐마니노프도 포함되어 있었다.
![]() 10살 때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자신의 졸업 연주 작품으로 연주할 정도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비르투오소(Virtuoso) 기교를 바탕으로 13도 음정을 짚을 수 있는 큰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쇼팽과 슈만, 리스트와 차이콥스키, 그리그 등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에 심취하여 그들의 작품을 많이 연주하며 그의 피아노 작품 또한 이들 작곡가들의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특히 쇼팽의 발라드와 왈츠,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슈만의 카니발 작품9 등을 포함해 자신의 전주곡을 자주 연주했다.
![]() 라흐마니노프와 유진 오르먼디. |
초기 피아노를 중심으로 작곡활동을 펼치다 교향곡 1번 작품13의 초연 실패 후 낙담한 그는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의 심리치료 덕분에 깊은 늪에서 빠져 나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며 작곡가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24개의 피아노 전주곡, 4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7개의 가곡집, 두 개의 현악 사중주, 첼로 소나타, 오페라 알레코를 비롯해 프란체스카 다 라미니, 3곡의 교향곡 외에도 교향적 무곡 등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작곡 활동을 한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 경향의 슬라브적인 감성이 강한 작품을 남겼다.
1939년 8월 11일 루체른 국제음악제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끝으로 유럽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는 1939년 11월 26일과 12월 3일, 미국 데뷔 30주년을 기념하여 작곡가에게 헌정하는 오케스트라의 특별 콘서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지휘자 유진 오르먼디(Eugene Ormandy, 1899. 11. 18. ~ 1985. 3. 12.)와 함께 뉴욕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했다. 12월 10일 마지막 콘서트에서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3번과 종(The Bells)을 지휘하여 1917년 이후 처음으로 지휘자로 공연을 펼쳤다.
![]() 라흐마니노프와 유진 오르먼디. |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작곡된 교향적 무곡은 그가 67세에 작곡한 만든의 원숙한 작품이다. 연주 여행으로 왕래하던 중 본인의 창작활동과 안정적인 연주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40년 건강이 악화되어 뉴욕의 롱 아일랜드에서 요양을 하던 차 당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1938~1979까지 역임)으로 활동한 유진 오먼디의 위촉을 받아 작곡을 착수하게 된다. 안무가 미하일 포킨(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Фокин, 1880. 4. 23. ~ 1942. 8. 22)과 함께 이 곡을 발레용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포킨의 죽음으로 무산되었다. 이는 교향곡 3번 완성 후 4년 만의 창작 활동으로 8월 10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성으로 작곡하고, 10월 29일 오케스트라 버전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유진 오먼디의 지휘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1941년 1월 3일 초연되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버전은 1942년 8월 캘리포니아 베벌리 힐스 자신의 살롱에서 호로비츠(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1903. 10. 1. ~ 1989. 11. 5.)와 함께 연주되었다.
●음악적 특징
곡의 특성상 굳이 교향곡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A-B-A 형식의 춤곡으로 완성했다. 작곡 초기 환상적 무곡으로 구상하다. 모두 3개 악장 구성에 각 악장별 제목을 <정오, 황혼, 자정>으로 붙여 ‘환상적’인 어구 대신 교향적 무곡으로 완성됐다. 여기에 착안하여 바르톡이 보스톤 심포니를 위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교향적 무곡은 1악장에서 리드미컬한 패시지와 서정적인 선율이 혼재되어 러시아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담은듯하다. 때로는 힘찬 패기와 젊은 날의 추억을 담아 교향곡 1번의 주제를 등장시키고, 1악장 코다는 잉글리쉬 혼의 연주로 저녁기도(Vespers)의 아홉 번째 주제 선율을 등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무곡의 백미는 1악장에 등장하는 알토 색소폰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제까지 사용한 적이 없는 색소폰을 사용하여 오보에와 잉글리쉬 혼, 클라리넷, 바순 사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었다. 두 번째 악장은 자극적인 왈츠로 낭만주의적 감성과 변화무쌍한 리듬이 마치 혼란한 세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강렬한 바이올린의 독주를 비롯해 관악기의 멜랑콜리 선율아래 무곡의 박자를 더해 농익은 무곡의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악장은 진노의 날(Dies Irae)의 선율과 교향곡 1번의 회상과 저녁기도의 알렐루야 등을 등장시켜 마치 삶과 죽음 사이에 힘찬 무곡을 통해 그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화려하게 끝맺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