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의 뮤직줌 <119>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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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줌 <119>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봄 오는 소리 들리는 듯…평온·목가적 분위기 '훈훈함' 감동
소나타 ‘장송’·‘월광’과 비슷한 시기 작곡
담백·순박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선율 특징
정통 소나타 형식에 세련된 음악 어법 담겨

유리우스 슈미트의 산책하는 베토벤 그림(1901년 빈 박물관)
최근 봄비가 내리고, 경칩이 지나면서 시기적으로 봄이 다가옴을 느낀다. 하지만 기온으로 봄기운을 느끼기에 아직은 아침저녁 공기가 쌀쌀하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와 온도 차이만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다. 산과 들, 자연을 보면 그들의 색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온기를 주는 음악이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감정과 폭풍을 질주하는 분위기를 그렸다면 그의 다음 소나타인 ‘전원’은 세련된 음악 어법으로 평온하며 목가적인 분위기가 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기존의 정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고수하며 ‘전원’의 따듯함과 화려함을 들려준다.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계몽주의자인 요제프 폰 존넨펠스. 위키페디아
● 작곡 배경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5번은 1801년에 작곡되어 1838년 함부르크 출판업자 크란츠(August Cranz, 1789~1870)에 의해 ‘전원’이라는 부제가 붙여져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제목의 유례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당시 전원을 붙인 작품들이 인기가 있어 상업적인 의도라고 보는 이도 있고, 이 작품이 갖는 음악적 특성을 잘 보여준 제목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소나타는 소나타 12번 ‘장송’, 피아노 소나타 13번 ‘환상곡 풍의 소나타’, 14번 ‘월광’ 소나타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다. 앞서 작곡된 세 곡의 소나타는 모두 혁신적인 형식으로 기존 소나타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12번 장송 소나타는 1악장에 느린 변주곡과 3악장에 장송 행진곡을 넣고, 13번 소나타는 전체 4개 악장이 유기적으로 아타카로 붙어 있는 구성을 띠고 있다.

14번은 1악장에 느리지만 린 악장을 따르고 있는 반면 소나타 15번은 소나타 형식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으며 심지어 3악장에 스케르초를 두고, 베토벤이 그의 초기 작품에서 주로 사용하던 4개 악장 구성을 따르고 있다. 이 소나타는 1802년 8월, 황제 요제프 2세의 총신이자 오스트리아의 유대인 계몽주의자인 요제프 폰 존넨펠스(Joseph von Sonnenfels, 1732~1817)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의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 중기 음악의 특징

빌헬름 폰 렌츠(Wilhelm vonLenz, 1809~1883)는 베토벤의 음악을 3기로 구분하고 있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영향을 받은 모방의 시기를 1기(1782~1802)로 하고,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adter Testament)를 작성한 시점을 시작으로 작곡가로서 음악적 본인의 스타일을 확립하며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외향적 시기를 2기(1802~1814)로 나누고 있다. 끝으로 낭만주의적 성향과 자유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인 내향화 시기는 3기(1814~1827)로 구분하고 있다.

‘전원’ 소나타가 작곡된 2기는 전통적인 형식에서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한 시기로 교향곡 ‘운명’, ‘전원’,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열정’,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 외에도 현악사중주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4, 5번과 바이올린 협주곡 등 그의 명곡들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5번 중 1악장 1주제 악보


● 악장 구성

베토벤은 전 악장에 동일한 으뜸음(라장조/라단조)을 사용하고, 각 악장의 주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구조적 통일성과 유기적으로 긴밀함을 부여하고 있다.

소나타 형식(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1악장은 빠른 템포를 지시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빠른 템포가 전혀 빠르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베토벤이 빠른 음표 대신 최하 팔분음표를 사용하며 선율적 연관성과 변형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스의 D 선율은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팀파니가 노래하듯 악곡의 시작을 알리고, 이후 오른손의 담백한 노래가 악장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순박하면서 화려하지 않은 주제 선율이 이 곡의 제목처럼 전원을 노래하는 듯하다.

느린 템포의 2악장은 3부 형식(A-B-A)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과 대조적인 라단조를 사용해 무겁고, 우울한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중간의 라장조로 조옮김은 앞서 장중한 분위기 전환으로 가벼운 익살과 해학을 표현하고 있다. 이후 첫 번째 주제의 반복은 마치 변주곡처럼 주제의 화려한 변형을 이루며 2악장을 서정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3악장은 트리오를 갖는 스케르초로 구성된다. 동음의 연속 진행이 선율의 어떤 진행을 가져올지 궁금증을 유발하며 짧은 스타카토 음형의 연속으로 경쾌한 익살을 들려주고 있다. 트리오는 왼손의 빠른 전개 속에 오른손은 변형된 스케르초 선율이 따라가며 베토벤의 익살을 들려주고 있다.

론도(A-B-A-C-A-B-Coda)의 4악장은 1악장의 서두에 나온 오스티나토와 같은 베이스의 D 음이 반복되며 연주된다. 이 선율은 마치 팀파니의 연주 가운데 전원의 아름다운 선율을 콧노래 하듯 목관악기로 노래하며 전개된다. 이후 유려한 아르페지오 선율이 물결처럼 흐르며 카논풍의 두 번째 주제를 연결하고 있다.

론도의 주제는 스타카토, 리듬 변형, 아르페지오 등을 통해 다양한 선율 변형을 들려주고 있다. 이후 론도는 프레스토의 가장 빠른 템포의 화려한 코다를 통해 왼손의 반복적인 주제 선율을 등장시키고, 오른손의 빠른 패시지를 교차시키면서 펼친화음의 화려한 음계를 통해 전원 소나타의 대미를 화려하게 마무리한다.



● 베토벤과 자연

베토벤 피아노 음악의 대가인 파울 바두라 스코다(Paul Badura-Skoda, 1927~2019)가 쓴 ‘베토벤 피아노 연주법과 해석’을 보면 베토벤이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1792~1851)에게 보낸 아래의 편지를 통해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다.



“덤불과 숲을 빠져나와 수목과 풀과 바위 사이를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나처럼 전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숲이, 나무가, 바위가 사람이 바라는 대답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만.”

“숲의 전능자여! 나는 숲에 있으면 기쁨에 넘치고 행복하오. 그것은 그대를 통하여 어느 나무든 나에게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오. 아, 신이여,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와 같은 삼림 지대에, 이 높이에 평안이 있습니다. 신에게 봉사하는 평안이….”



라이넥 카를(Reineck Karl, 1824~1910)은 베토벤의 전원 소나타의 도입부를 듣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또는 나무들의 속삭임을 연상시키고, 조지 그로브(George Grove, 1820~1900)는 목동의 음악을 연상시킨다고 표현했다.

김성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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