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쇼스타코비치 사진 |
![]() 1942년 2차세계 대전 중 소방대원으로 참전에 참여한 소스타코비치 |
![]() 당대 함께 활동하던 작곡가 사진(왼쪽 프로코피에프, 가운데 쇼스타코비치, 오른쪽 하차투리안) |
![]() 당대 함께 활동하던 작곡가 사진(왼쪽 프로코피에프, 가운데 쇼스타코비치, 오른쪽 하차투리안) |
![]() 피아노 연주에 탁월했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
●9번 교향곡의 저주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제외하고 10개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한 작곡가는 거의 없다. 베토벤이 그의 마지막 9번 교향곡 ‘합창 교향곡’을 남긴 이후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사실 브루크너(Anton Bruckner, 1824-1896)가 11개의 교향곡을 만들었는데, 이는 1번 교향곡을 출판하기 전, 00번 교향곡과 2번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 작곡한 0번 교향곡을 완성했고, 마지막 9번 교향곡은 3악장까지 밖에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말러는 8번 교향곡까지 순차적으로 출판하고, 아홉 번째 교향곡 대신 ‘대지의 노래’를 출판한 후, 9번 교향곡까지 완성하고, 10번 교향곡을 스케치하다 세상을 떠나 9번 교향곡의 저주를 풀지 못했다. 그러다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쇼스타코비치(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 1906-1975)에 의해 풀렸다.
●쇼스타코비치
20세기 러시아 음악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쇼스타코비치는 폴란드계 이민 3세로 1906년 9월 2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이후 작곡도 배우며 음악가로서 소양을 쌓기 시작했다. 1919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피아노와 작공 전공으로 입학하여 뛰어난 성적 학업을 이어갔다. 혁명기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며 어려운 가정형편 가운데 당시 음악원의 원장인 글라주노프의 각별한 후원을 받으며 학업 외에도 가족을 부양하며 작곡가로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글라주노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이미 10대 때 교향곡을 완성해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그의 교향곡은 프로코피에프나 베르크 등 당시의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유럽 음악이 무조음악과 12음기법 등 아방가르드가 유행하던 때 그는 사회주의와 혁명에 대한 관심이 풍자적으로 표현되거나 정치적으로 순응하는 듯하면서 우회하는,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그의 현실과 고통 속에서 창작을 이어 갈 수밖에 없는 그의 숙명이 엿보인다.
●교향곡 8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은 독일과 소련이 전쟁 중인 1943년 여름에 작곡됐다 . 5악장 구성의 한 시간가량 연주되는 이 교향곡은 앞서 5번, 7번과 다르게 분위기가 무겁고, 침체되어 있어서 초연 후 당시 음악가들과 청중들에게 소외된 곡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소련 정부는 예술을 정치 선동의 도구로 당시 많은 예술가에게 애국적 작품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쇼스타코비치 또한 그 역사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1942년 3월 그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초연됐다 .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을 “전쟁의 시(時), 민족정신의 찬가”로 정의하며 작곡가로서 그의 업적을 인정받는 중요한 작품을 남겼다. 앞서 발표된 7번과 9번 사이에 가려 많이 연주되지 않고, 그래서 다른 교향곡 보다도 덜 알려져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교향곡을 한마디로 “인생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우울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지고 있다” 고 했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예술을 ‘사회선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던 당국의 지침에 따를 뿐 음악적 분위기나 전개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실제로 전 악장의 연주 시간이 60분에 달하고, 특히 1악장만 30분 정도 연주되며 아다지오의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음악적 특징
교향곡은 보통 소나타 형식을 기본으로 악장 중 한 악장은 반드시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교향곡 8번은 전통적인 형식을 피하고, 자유로운 구성을 따르고 있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과 같이 5개 악장을 따르고 있고, 느린 1악장과 뒤 따르는 2악장부터는 아타카로 끊임없이 연주되어 마치 1부와 2부로 나뉜 것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 각 악장의 주제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 주요 선율 사이의 동기적 관련성을 들려주고 있다. 특히 모든 악장의 주제 선율은 2도 하행 또는 상행하며 원음으로 돌아가는 패턴을 보여준다. 이러한 음악적 모티브는 대규모의 악곡에 통일성을 부여하며 굳이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순환형식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악장은 느리고 , 빠르고 느린 3부 형식을 갖추고 있다. 아다지오의 저음부 주제 선율은 무거우면서 강렬한 전개를 예상시킨다. 2악장과 3악장은 모두 스케르초 성격의 빠른 템포를 유지하고 있으며 때로는 행진곡의 특징을 들려주기도 한다. 라르고의 4악장은 모든 악기가 매우 세게 같은 선율을 연주하며 비통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악장은 파사칼리아 형식으로 모두 12회에 걸쳐 반복되는 베이스 선율에 다양한 악기군의 멜로디 변형을 통해 짧지만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마지막 5악장은 빠르고 -느리고 - 빠른 3부 형식을 통해 2도 간격의 상·하행의 주제 선율을 저음 현악기와 클라리넷의 선율로 노래하다 첼로 파트가 뒤 따르며 선율을 들려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의 주제는 1악장의 아다지오 선율이 재등장하며 비통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빠른 템포로 돌아온 주제 선율은 다시 앞의 주제를 다시 연주하며 저음의 피치카도로 사라지듯 연주를 마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을 파병함에 따라 국제 평화가 위협받고, 세계가 초조해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에 가담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지금의 형태를 하루빨리 멈추길 희망한다.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을 때만 국가도 존재하고,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즉,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국민의 안전이 보장될 때 비로소 국가는 존재할 수 있다. 격변의 시대에 태어나 쇼스타코비치가 20세기 초가 아닌 이보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났거나, 그보다 한 세기 후에 태어났다면 어떤 작품을 남기고, 어떤 인물이 됐을지 궁금해지는 교향곡 8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