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7년 3월 27일 글라주노프 지휘로 초연했다. |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라흐마니노프(1873~1943)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패한 작곡가에서 성공한 작곡가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의 작품은 오늘날도 어느 무대에선가 연주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1873년 봄 러시아의 오네그에서 태어난 라흐마니노프는 어머니로부터 4살 때 피아노를 처음 배우고, 5살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한 안나 오르나츠카야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이후 18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해 9살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집안 사정이 악화되고, 1885년 마지막 학기 시험에 낙제하며 장학금이 취소됐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를 학업을 놓지 않고, 모스크바 음악원 질로티(1863~1945) 문하에 들어거 학업을 이어갔고, 이곳에서 즈베레프(1832~1893)와 아렌스키(1861~1906)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게 된다.
1888년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상급반으로 진학, 질로티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타네예프(1856~1915)에게 대위법을, 아렌스키에게 화성학을 배우며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소양을 다지게 된다.
1891년 피아노 6월 5일 피아노과를 최우수로 졸업하고, 졸업 작품을 피아노 협주곡 1번 작품1을 완성해 그의 스승인 질로티(1863~1945)에게 헌정했다. 이후 그의 창작 작품은 피아노 독주곡이나 피아노가 포함된 성악 및 실내악곡 중심으로 발표했다.
그후 1895년 야심차게 그의 첫 번째 교향곡 1번 작품13을 스케치하고, 1897년 완성했다. 그해 3월 27일 글라주노프(1865~1936)의 지휘로 초연을 가졌다.
하지만 지나친 의욕과 음악적 동기를 집약해 완성한 교향곡 1번은 평단의 혹평을 받으며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이러한 여파로 그는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고 만다. 3년간 작곡 활동을 접고, 대신해서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다.
●좌절과 실패
라흐마니노프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일부를 메모했을 정도로 당시의 사랑과 아픔을 표현했지만 초연의 실패가 당시 지휘를 맡았던 글라주노프의 음주 중 초연이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공연을 위한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갖지 못한 점과 초연을 맡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기량 문제도 언급됐다.
●극복과 성취
교향곡 1번의 초연 실패 이후 3년 동안 작곡가로서 정신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는 한동안 하루 중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보냈다. 그러던 중 정신과 의사인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갔다.
달(1860~1939) 박사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라흐마니노프의 팬이기도 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심리치료와 수면을 유도하며 “당신은 이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게 되고, 협주곡은 작곡하기 쉽다. 아주 멋진 협주곡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하며 암시요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치료는 그가 다시 작곡을 할 수 있게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켰다.
1900년 8월 피아노 협주곡 2번 중 일부인 2악장과 3악장을 완성했다. 그해 12월 2일 질로티의 지휘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로 최초 공개되었다.
성공적인 초연은 라흐마니노프에게 남은 1악장을 작곡할 동기가 됐고, 1901년 초부터 다시 작곡을 시작했다. 그해 11월 9일 완성된 3개 악장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피아노 연주와 스승인 질로티의 지휘 아래 모스크바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됐다.
작품에 대한 평과 연주는 달 박사가 그에게 최면을 걸듯이 말한 대로 성공적인 무대였다.
라흐마니노프는 감사에 대한 답례로 이 협주곡을 달 박사에게 헌정하고,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는 협주곡으로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피아노 협주곡으로 분류된다.
●차이점과 특징
당시 피아노 협주곡에서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위치는 7대 3 정도로 독주악기의 화려한 면모를 들려주는 것이 이상적이었으나 라흐마니노프는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때로는 피아노가 오케스트라의 반주자 역할을 주도적으로 함으로인해 묘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다.
이 협주곡의 1악장 서주는 마치 교회의 종소리처럼 두꺼운 화성음들 사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베이스의 울림이 강한 여운을 남기고, 이후 오케스트라의 주선율 사이로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음형은 슬라브적인 감성을 담고 있어 중독성 있는 오프닝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그가 존경했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오프닝을 연상시킨다.
달 박사의 도움으로 라흐마니노프는 이후 수 많은 피아노 독주곡과 협주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교향곡 2번 마단조 작품27과 교향곡 3번 가 단조 작품44, 교향적 무곡 작품45 등을 완성하며 교향곡의 실패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실패는 결국 극복할 수 있는 사건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관점에 따라 삶의 장애물이 될 수 있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성공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 Sergei Rachmaninoff and Dr. Nikolai Vladimirovich Dah |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929년) |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929년) |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서주와 1주제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