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트뮬러가 그린 베토벤의 유화 그림 |
![]() 베토벤의 연인이었던 줄리에타 귀차르디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Moonlight, Op. 27-2)’은 피아노 문헌 가운데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명곡이다.
1801년 피아노 소나타 13번(작품 27-1)과 소나타 14번은 모두 환상곡 풍의 소나타(Sonata Quasi una fantasia)의 부제를 갖고 완성되었다. 이 곡을 작곡하기 전인 1798년부터 시작된 귓병은 점점 악화되어 작곡가로서 희망을 잃어갈 무렵 작곡되었다. 당시 연인인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 1782~1856)와 연애도 그녀의 집안에서 반대하여 난항을 겪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결국 1802년 자살을 생각하며 그의 동생과 조카에게 유서를 남기는 처절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소나타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서정과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 그의 흔적과 도전정신을 음악적으로 완성해 냈다.
이 소나타의 작곡 동기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베토벤이 달빛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거나, 시력을 잃은 여인이 달빛을 묘사해달라는 요청으로 완성됐다거나, 그가 연인에게 이별하는 곡으로 작곡했다는 등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 소나타가 월광으로 불리게 된 동기는 베토벤 사후 5년 후인 1832년 음악평론가이자 시인인 루드비히 렐스타프(Ludwig Rellstab, 1779~1860)가 1악장을 “달빛에 젖어있는 루체른(Lucerne) 호수를 떠가는 조각배”가 연상된다고 한 말에서 유래됐다.
![]() 베토벤이 사용했던 그라프 피아노 |
당시 피아노의 전신인 포르테피아노의 완성단계로 이전까지는 발 페달이 개발되지 않아 하프시코드처럼 손으로 스톱을 조작해 울림을 조절했다면 1780년대 이후 영국의 존 브로드우드가 댐퍼 페달을 고안하면서 피아노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당시 존 브로드우드가 발명한 피아노가 보급되면서 피아노를 배우는 인구가 늘어나고, 살롱 음악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음악이 발전하게 되었다. 오래된 악기를 보면 흑·백 건반의 위치가 지금과 반대로 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당시 미관상의 이유와 흑건이 백건반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 연주자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학설에 따라 지금과 같이 자리 잡게 되었다.
피아노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1800년대 초반 에라르(Sebastien Erard)에서 이중이탈장치(Double escapement)를 발명하고 피아노의 프레임을 목제에서 철제로 변경하며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는 더 빠른 트릴과 연타나 트레몰로가 가능해졌고, 현의 장력을 강하게 하며 더 크고 강한 소리를 구현하게 되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중 1악장의 자필 악보 |
베토벤은 ‘월광 소나타’를 기존의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난 ‘환상적 소나타’로 완성했다. 일반적으로 소나타의 1악장에서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을 취하는 대신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느리게 음을 길게 끌어)’를 구성하여 변칙적인 소나타 형식을 들려주고 있다.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와 코다를 갖추고, 특별한 선율보다는 셋잇단음표의 연속되는 동기와 무거운 베이스의 화성 진행이 인상적이다.
2악장은 중간에 트리오가 포함된 미뉴에트 형식으로 무거운 1악장과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격정적인 3악장 사이 잠시 휴지기를 갖는 귀엽고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성적 특징으로 1악장에서 사용한 올림 다단조와 같은 으뜸음 조인 내림 라장조를 2악장에 사용해 앞뒤 악장 간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악곡의 빠르기는 앞서 1악장에서 아다지오보다 조금 빨라져 알레그레토를 사용했다. 마지막 3악장은 다시 원 조성인 올림 다단조로 돌아갔다. 소나타 형식의 프레스토 아지타토로 악장 분위기를 극적으로 만들어낸다. 격렬한 악장의 주제는 1악장의 셋잇단음표의 패턴이 16분음표의 패턴으로 바뀌어 베토벤이 의도한 ‘환상적 소나타’를 완성했다. 비슷한 주제의 패턴을 빠르기와 음형의 변화를 통해 곡의 유기적인 통일성과 구조적 발전을 만들어냈다. 아울러 19세기 초 고전주의의 형식을 탈피하여 낭만주의로 변화를 시도하는 참신함을 엿볼 수 있다.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표지 |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 중 1악장 악보 |
베토벤은 1악장 서두에 ‘이렇게 아주 섬세하고 음절 없이 연주한다(Si deve suonare tutto questo pezzo delicatissimamento e senza sordini)’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음절 없이는 댐퍼 페달(damper pedal or sustain pedal)을 누른 채로 연주하라는 의미다. 베토벤은 여기서 이것도 부족했는지 악보에 계속 피아니시모로 부드럽게(sempre pp e senza sordino) 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당시 피아노의 성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표기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1악장에서 댐퍼 페달을 사용해 연주할 것을 지시하고 있어 당시 피아노의 성능과 페달이 월광 소나타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기법은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의 1악장 레치타티보(Recitativo)와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의 3악장 앞부분에도 나타나고 있다. 신비스러운 울림과 음향을 만들어 곡의 분위기 전환에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간혹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런 표제가 주는 특징은 고전음악의 매력을 전달하고, 음악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간혹 무기력하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 이 소나타의 감상을 추천한다. 1악장의 무거운 감정은 2악장의 미뉴에트가 신선한 공기를 가져와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마지막 휘몰아치는 3악장에서 잠재된 에너지를 발산하며 삶의 동기부여를 일으킨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작품이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연주되고, 감상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김성수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공연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