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쁜 일상 속 놓쳐버린 ‘나’를 찾아서
문학출판

숨 가쁜 일상 속 놓쳐버린 ‘나’를 찾아서

시인 이근화 ‘작은 것들에~’ 에세이 출간
지친 삶에 숨결 불어주는 행복 소생기

이근화 시인이 산문집 ‘작은 것들에 입술을 달아주고’(창비)를 펴냈다.

이 시인의 신작은 일상과 존재, 사랑과 상실의 경계를 오가며 살아온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이자 끝내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기록이다. 시인이자 네 아이의 엄마, 노모의 간병인, 생계를 이어가는 생활인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근화 시인은 매일의 삶과 시를 함께 일궈왔다. 이 책은 그 꾸준하고도 고된 발걸음의 흔적을 따뜻하고 단단한 문장에 담아낸다.

육아와 간병, 생업의 압박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고, 소중한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는 일상은 숨통을 조이지만 이 시인은 그 속에서도 작고 명랑한 것들을 발견해낸다. 불확실한 내일과 고단한 오늘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시인은 가까운 것들부터 하나씩 돌보는 삶을 선택한다. 솔방울 하나, 아이의 웃음, 지나가는 고양이, 길가의 무화과 같은 것들이다. 거창한 해답보다 작고 느린 발견이 시인의 문장 안에 반짝이며 살아 숨 쉰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에세이는 ‘딸이자 엄마, 생활인이자 시인’으로 살아가는 이근화 시인의 복잡하지만 단단한 일상을 조심스럽게 엮어낸다.

1부에서는 거칠고 뾰족한 말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도 순하고 다정한 말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아이와 동화의 세계를 오가고, 병원과 주삿바늘의 세계를 왕복하는 일상 속에서 그는 자주 지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고단한 삶이지만 시를 쓰는 사람으로, 괜찮은 엄마로 남고 싶다는 바람이 그를 계속 걷게 한다.

2부에서는 타인과의 관계, 세상과의 마주침에서 깨달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눔과 돌봄의 자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선의, 오랜 선배와 동료 여성들의 단단한 삶이 등장한다. 특히 시인은 자신도 실수투성이 존재임을 솔직히 고백한다. 말과 가장 가까운 시인이기에 겪었던 말실수, 부끄러웠던 기억들에서 시인은 그런 실패 안에 진짜 ‘나’가 있다고 말한다.

3부에서는 상실과 애도, 그리고 다시 살아내야 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친구, 점점 멀어져간 사람들, 닿을 수 없는 시간들. 죽음과 이별은 너무 많고 삶은 늘 벅차다. 애도할 시간조차 없이 다음 날의 아침밥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이 시인은 ‘이토록 귀하고 이토록 허무한 시간이기에 시가 존재하는 것 아닐까’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시’라는 단어를 ‘삶’으로 바꿔 읽는다면 이 책이 지닌 진심이 선명해진다. 슬픔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우리는 살아야 하기에, 작은 것들에 다시 입술을 달아주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틴다. 결국 이 에세이는 평범한 날들 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행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지친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회복의 기록이 된다.

이근화 시인의 산문은 시처럼 섬세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삶이 고되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다정한 위로로, 혹은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나친 아주 작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근화 시인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이근화 시인은 2004년 ‘현대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 ‘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나의 차가운 발을 덮어줘’,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고독할 권리’,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등이 있다. 이 시인은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장환문학상, 상화시인상, 지훈문학상 등을 받았다.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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