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재해보험 개편은 시대적 과제
기고

농작물 재해보험 개편은 시대적 과제

강정일 전남도의원

농촌의 위협은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기후위기로 인한 태풍이나 폭우, 폭염에만 그치지 않는다. 눈에 띄지않게 퍼지며, 서서히 작물의 생명을 앗아가는 ‘병해충’이 기후위기의 확산과 함께 제2의 농업재해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기후는 유례없는 양상을 보였다. 강수량은 급증하고, 일조량은 줄어들었으며, 여름철은 더 뜨겁고 겨울은 덜 추워졌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병해충의 활동 범위를 확대시켰고, 단순한 예방만으로는 더 이상 대응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며 실제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전국 최대 배 주산지인 나주의 경우, 지난해 배 재배면적의 40%에서 ‘흑성병’이 발생했다. 흑성병은 과실이 검게 변하면서 상품성을 잃게 만드는 병해로, 현재까지 효과적인 방제책이 없는 상황이다. 광양의 대표 농산물인 매실, 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장마철 고온다습한 기후는 탄저병 확산을 부추기며, 한 번의 피해에 그치지 않고 다음 해까지 병이 잔존해 농가에 치명적인 손실을 안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병해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연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보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작물 재해보험 제도는 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구조는 점점 더 심화되는 병해 피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탄저병은 감뿐 아니라 복숭아, 매실, 고추, 딸기, 수박, 배, 감귤 등 다양한 과수와 채소에서 발생하며, 감염 속도가 빠르고 확산 범위도 넓다. 광양 지역에서도 매년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 탄저병에 대한 농가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진다. 예방 약제를 정기적으로 살포하고, 병든 과실을 조기에 제거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강수량과 기온이 겹치면 탄저병은 순식간에 과수원을 덮친다.

이처럼 기후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병해충조차 농가의 ‘관리 부족’으로 간주돼 재해보험의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실제로 현행 농작물 재해보험은 태풍, 우박, 가뭄 등 일부 자연재해에만 보상이 집중되어 있으며, 병해 피해는 일부 작물과 특정 병해에 국한된 특약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감의 탄저병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병해가 사실상 자연재해로 기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보상 대상 외’라는 딱지를 붙인 채 외면당하고 있다.

이제 농업용 재해보험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감을 포함한 탄저병 피해를 농작물 재해보험의 보장 항목에 즉시 포함해야 한다. 둘째, 병해 피해를 기후 조건에 따른 ‘기후성 병해충’으로 분류하고, 자연재해와 동일한 기준에서 보상 체계를 적용해야 한다. 셋째, 농업인의 귀책 사유가 아닌 외부 기후 요인에 의한 피해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변화는 농업의 모든 전제를 뒤흔들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농민의 노력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농업인을 보호하는 최후의 안전망이 되어야 할 농작물 재해보험이 지금처럼 ‘비현실적인 약관’에 머무른다면, 결국 농업의 지속 가능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농업 현장에서는 이상기후로 인한 병해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그 피해는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한 해 농사를 의지로 버텨온 농민들의 삶 그 자체다. 농업은 대한민국의 뿌리이며, 농업인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다. 병해충에 대한 외면은 곧 농업에 대한 외면이다. 이제는 병해도 농업 재해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제도적 보장을 시작해야 한다. 병해를 보장하는 농작물 재해보험 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시대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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