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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최신작 '티나의 알'(글 심명자, 그림 강서해, 2025·고래책빵)의 주인공 티나는 처음으로 큰 책임을 맡게 된다. 타조들이 알을 낳으면 천적인 자칼이 와서 다 가져가 버리니 이를 막기 위해 공동육아를 하기로 결정했다. 날개가 큰 티나가 친구 타조들의 알까지 모두 품게 되었다. 티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게 되니 서툴고 힘들어서 알을 두고 가끔 둥지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자기 일에 소홀한 것은 티나만이 아니다. 친구 타조들도 자칼이 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보초를 설 때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티나가 제대로 알을 품지 못할 거라는 의심도 한다. 곧 알에서 아기 타조들이 깨어날 때쯤 자칼이 습격하자 티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알을 지켜낸다. 티나를 믿지 못해 둥지로 몰려들던 타조들도 그 모습을 보고 서로 힘을 모아 자칼을 물리친다. 아기 타조들이 무사히 깨어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된 타조들은 책임을 다한 모습에 서로 흡족해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책임감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가듯 타조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간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8년부터 5년 주기로 대기업 인재상을 조사하고 있다. 첫 조사에서는 창의성이, 2013년에는 도전정신이, 2018년에는 소통 및 협력·신뢰가 강조됐다. 2023년의 네 번째 조사에서는 책임의식이 1순위로 뽑혔다. 이전에 선호하던 도전정신은 2위, 소통과 협력은 3위로 조사됐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현재대한상공회의소가 공개한 100대 기업의 인재 보고서의 핵심 키워드는 책임의식이며, 그 다음으로는 창의성, 원칙과 신뢰, 전문성과 열정 등으로 이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문성 영역이 더 우선순위였지만 책임감으로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제트 세대의 출연 때문에 책임의식이 인재의 최고 덕목으로 떠오른 이유라고 밝혔다. 특히 MZ 세대들의 이른바 '삼요 주의보'를 지목했다. 상사의 업무 지시에 MZ 세대들이 주로 '이걸 요?, 제가요?, 왜요?' 등으로 응대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MZ 세대는 기업의 수평적인 조직, 공정한 보상, 불합리한 관행 제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기업에서는 책임의식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 중에 책임감이 없는 인물을 들자면 당연히 선조이다. 선조는 한양에서 일본군의 위협을 느끼고, 1592년 4월에 그의 가족, 측근들과 함께 강화도로 피난을 떠난다. 강화도에서도 상황이 좋지 않아 평양으로 이동하고, 다시 여러 지역을 거쳐 의주까지 간다. 급기야 분조를 해서 광해군에게 일본군을 대응하게 하고 본인은 명나라로 망명할 계획이었다. 왕권과 조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고는 하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빈궁한 결정이 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때마침 명나라의 원군이 왔기에 망정이지 백성들이야 어찌 되든지 개의치 않고 우선 살고 보자는 왕을 어찌 성군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선조의 졸속 결정은 방계 출신 왕이라는 열등감과 무관하지 않다. 신하들을 의심해서 부지기수로 귀양을 보내거나 처형을 하던 선조는 백성의 어버이라고 할 수 없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왕일뿐이다. 그의 국정 운영의 폐단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로부터 출발했다.
자기애가 형성될 때 대체로 양육자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자기애가 왜곡 되어 선조처럼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게 된다.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음에도 자신의 판단이 정의롭고, 옳은 것이며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황을 재구성한다.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로 인한 특권의식을 갖고, 타인에게 착취적이거나 오만한 행동을 보여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한다.
국민의 민생 안정의 책임을 갖고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가를 위기상황으로 몰아간 죄로 현직대통령 체포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는 법정에서 정황과 사실이 모두 드러났음에도 말과 맥락을 바꿔 진술하고 무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곡된 자기애와 자기중심적 사고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이용해 민중들을 탓하고, 자신이 정의롭다고 외친다. 12·3 사태로 국가경제와 국가 신뢰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으며, 민생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다. 정치공학에 무지하면서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은 그 책임의 대가로 혼란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책임을 회피하기만 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 살 박이로 돌려 다시 인성교육, 책임감 교육을 제대로 시켜달라고 부탁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