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제왕적 대통령제, 이젠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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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제왕적 대통령제, 이젠 바꾸자

박상수 광주전남언론인회 부회장
조선시대 왕보다 더한 권력
근본적으로 제도 바꿔야

윤석열 대통령의 생뚱맞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국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까지 들어서면서 정부가 구심점을 잃고 불안한 항해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정상 외교가 멈춘 상태다. 환율이 치솟고 물가가 오르는 등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는 날마다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의 준비되지 않은 정치 초년생 윤석열은 애초부터 대통령 자격 미달자였다. 폭탄주 마시고 극우 유튜브 보는 것이야 개인 취향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취임 이후 2년 반 동안 내치, 인사에서 외교까지 올바로 국민 성에 차는 일을 한 게 없다. 남북 화해와 국민 통합, 여야 협치는 외면하고 나라를 온통 이념 전쟁의 장으로 만들었다. 가족과 측근 비리는 감싸 안으면서 오로지 정적인 야당 대표 탄압에만 몰두했다.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불안 불안하더니 기어이 비상계엄 선포라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전시 상황도 아닌데 비상계엄을 선포해 전두환처럼 철권통치를 할 생각을 했다니 제정신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헌법이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브라질 등 일부 국가가 대통령중심제로 운영되지만, 한국은 유독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다. 외교, 국방과 내치까지 국가 대소사가 모두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움직인다. 한국은 3권분립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의원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일부도 지명하는 등 입법과 사법 권한까지 쥐고 흔든다. 조선 시대 왕보다 더한 절대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시대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선비들 때문에 왕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과정에서 보듯이 그걸 막아서는 참모가 없다.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갖다 보니 스스로 권력에 취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도 이번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을 잘 뽑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제도를 바꿔 제왕적 대통령이 탄생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한 명에게 집중된 권력 구조를 분산하고, 지방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실질적인 지방자치제를 실현해야 한다. 우리가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는 개발도상국이어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접어들었고 국민 의식이 성숙한 지금은 권력 구조를 분산함으로써 선진국의 위상에 맞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 한자 법(法)은 물 수(水)변에 갈 거(去) 자로 이뤄져 있다. 물이 흘러야 썩지 않는 것처럼 법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수시로 고쳐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제도로는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꼽을 수 있다. 내각책임제는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 또는 연합이 총리를 맡아 행정부를 구성하는 제도다. 일본, 영국 등 왕이 존재하는 나라가 주로 채택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가 절충된 제도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외교와 국방 등의 권한만 갖고,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정부를 운영하는 형태다. 프랑스,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이 이 제도를 채택한 나라다. 우리나라에는 후자가 더 적합한 제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대통령제를 비롯해 모든 제도가 장단점을 갖고 있다.

이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이로 인한 탄핵을 계기로 각계에서 개헌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정치권 원로들은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전에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에서는 국민의힘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차기 집권이 유력하다고 보기 때문인지 민주당에서는 개헌 논의 자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정치권 원로들이 주장하는 '선 개헌 후 대선'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재 개헌 주체가 확실하지 않고 국민투표까지 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 지금 추세로 보면 윤 대통령의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이뤄질 것이 확실하다. 누가 됐든 차기에 선출된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국민 여론을 수렴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윤석열이 또 나오고, 우리는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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