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봄의 자리 '기후위기 시계'의 경고
특별기고

흔들리는 봄의 자리 '기후위기 시계'의 경고

장동언 기상청장
봄의 설 자리 점점 줄어들어
탄소배출 감소·기후변화 대응

장동언 기상청장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낸 가지 끝에 노란 개나리꽃이 피어나고 찬 기운이 사라진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면, 바야흐로 봄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마른 풀 사이 연둣빛으로 올라오는 새싹, 따사로운 햇살 아래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며 봄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토록 반가운 봄이지만, 최근 들어 봄을 충분히 즐길 여유가 줄어들고 있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전히 오기도 전에 여름 같은 더위가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에 봄의 설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기상청 기후정보 포털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한 지역의 봄철 평균기온이 과거 30년(1973~2000년)에는 11.5도에서 최근 30년(1991~2020년)에는 12.1도로 0.6도 상승했다.

같은 기간 여름과 가을의 평균기온이 각각 0.4도, 0.5도 상승했음을 고려할 때, 봄철의 기온 변화는 무시할 정도의 수치가 아니다. 과거와 다른 기온 변화로 봄꽃 개화 시기를 예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충분히 피어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금세 뜨거운 햇볕에 시들기도 한다.

봄철 기온 상승은 자연에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뿐만 아니라, 생태계와 인간의 생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두 해 일어나는 계절적 변덕이 아닌 기후변화는 우리에게서 포근한 봄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는 ‘기후위기 시계’가 설치돼 있다. 이 시계는 인류가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을 시 지구의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2020년 설치된 이후 멈추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기후위기 시계는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시간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전 세계에 기후 위기의 긴박함을 경고하고 있다.

현재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올해 3월 31일을 기준으로 4년 113일 14시간. 4번의 봄이 지나면 우리의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사라지게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탄소를 배출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봄은 우리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앞에 다가온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삶을 실천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지구의 날을 전후로 일주일 동안 ‘기후변화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전국적으로 탄소중립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생활 속 실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올해도 55번째 지구의 날을 맞아 21일부터 25일까지 기후변화주간이 운영된다. 올해의 메시지는 ‘해보자고 기후행동! 가보자고 적응생활’이다. 여기에는 탄소중립 생활을 실천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강화해 기후 위기를 함께 해결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기후변화주간을 맞아 일상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노력이 일주일에 그치는 것이 아닌, 꾸준히 지속된다면 좋을 것이다.

기후위기 시계의 경고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 머물게 될 수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나부터라는 마음가짐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활을 실천한다면 기후위기 시계를 늦출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 다회용품 사용, 에너지 절약 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봄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봄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봄을 맞이할 때, 봄바람에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을 두 눈 가득 담게 해주어야 한다. 흔들리는 봄의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의 봄의 시간을 지키는 일이다. 봄이 설 자리를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 적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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