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다 진했던 광주의 형제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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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했던 광주의 형제들을 위한 기도

광주시향 5·18음악회 ‘형제들’ 리뷰

광주시립교향악단
광주시립교향악단 이병욱 지휘자가 취임과 동시에 올 한해 레파토리를 설명할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공연은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음악회였다. 예고된 프로그램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었기 때문이다.

이병욱 지휘자는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이던 2024년 인천시향과 함께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해 한국 브루크너협회로부터 ‘2024 한국 브루크너 음악상’을 수상, 국내에서 브루크너를 가장 깊이 있게 해석하는 지휘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그가 광주시향과 함께 선보일 브루크너에 관심이 쏠렸다.

취임 연주로 브루크너를 고려하기도 했던 이 지휘자는 5월을 선택했다. 광주시향과의 호흡을 어느 정도 맞춘 시기, 그리고 광주시향의 가장 중요한 무대이기도 한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브루크너를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이병욱 지휘자는 광주시향이 지난해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데다 5·18에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측면에서 약간은 미완성이라고 생각, 미완성 교향곡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만나면서 이병욱 지휘자가 5·18 45주년 기념음악으로 선택한 이유가 느껴졌다. 사실 클래식 초보자들이 브루크너를 듣기엔 쉽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걱정도 많았지만 광주시향과 이병욱 지휘자의 호흡이 만들어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가슴깊은 울림을 줬다. 그동안 사진으로, 글로, 흑백의 짧은 영상으로 봐왔던 1980년 5·18 열흘간의 항쟁이 선율과 타고 흘러가는듯했다. 미완성으로 3악장에서 끝난데다 앙코르도 없어 연주 그 자체가 더 5·18과 어울렸다.

이날 공연 서막은 패르트의 ‘형제들’이었다. 수도원의 예배당으로 향하는 수도사들의 행렬이라는 설명대로 현악 오케스트라와 타악파트로 이뤄진 연주는 80년 5월의 수많은 광주시민들의 행렬을 연상케했다.

이어진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장엄하고 신비롭게’라는 지시로 시작된 제1악장은 처연했고, 헌혈을 하고 주먹밥을 나눴던 평화로운 5·18 대동세상이 떠올랐다. 제2악장 ‘스케르초, 가볍고 쾌활하게’는 기이할 정도로 강렬하고 거칠고 역동적이라고 했는데 마치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시위 현장이 펼쳐지는듯 했다. 제3악장은 신성하고 숭고했다. ‘아다지오:느리고 장중하게’라는 지시답게 폭발적이면서 동시에 응축된 격정과 영묘한 고요 사이를 부단히 오갔다. 장엄한 선율 사이사이로 5·18 그 이후의 광주의 모습이 보이는듯했다.

마지막 악장은 브루크너가 이 곡을 ‘사랑하는 신(Dem lieben Gott)’에게 헌정한 것처럼 신을 향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광주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됐던 광주의 형제들을 위한 기도였다. 미완성 곡이기에 그 마무리를 청중의 해석에 맡기며 여운을 남긴 이 곡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마주했고,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다짐하게 만든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지난 5월 한달간 80년 5월을 기억하는 수많은 전시와 공연, 문화행사들이 열렸다. 그리고 그 5월을 마무리하는 마지막이 광주시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끝내 완성되지 못한 장엄한 이별의 인사였기에 더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 같다.
최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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