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 격퇴 후 세계사 유례없는 '해방광주' 자치공동체 구축
기획

계엄군 격퇴 후 세계사 유례없는 '해방광주' 자치공동체 구축

"고립된 것·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또다른 이름이 광주였음을…"
노벨상 한강작가 '광주' 표현
박정희 사후 민주화 열망 폭발
신군부, 5월17일 계엄령 확대
민주화 열망 국민 폭력 짓밟아

부상자 치료를 위해 시민들이 헌혈을 하러 줄을 이은 광주적십자병원.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5월 말까지 일반에 개방되고 있다.
그해 오월 남도는 하나였다 5·18 광주사적지를 가다 1 신군부 정권찬탈 맞선 열흘간의 민주항쟁





한강 작가는 광주를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12·3 비상계엄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5·18사적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지고 기억하면 계승된다. 더 이상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가 일상에서 기억해야 한다. 전남에 이어 광주 5·18사적지를 연재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국립5·18민주묘지. 항쟁 직후 신군부에 '폭도'로 매도된 오월영령들이 '민주유공자'가 돼 잠들어 있는 곳이다.






● 신군부, 비상계엄 확대…계엄군 투입

박정희 18년 독재권력이 무너지고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한쪽에서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집권야욕을 키우고 있었다. 국민은 어렵게 찾아온 민주주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날마다 거리에 나섰다. 시위는 1980년 5월 절정을 이뤘다. 광주에서도 날마다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신군부는 5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계엄군'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공수부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에 무자비한 폭력으로 맞섰다. 신군부와 민주세력의 대충돌이 일어난 것. 그 가온누리에 광주가 있었다. 광주에서는 5월18~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항쟁을 벌였다. 시민들은 21일 계엄군을 물리치고 22일부터 닷새 동안 '해방광주'를 만들었다. 경찰과 군인이 없는 도심에서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먹을거리를 나눴다. 부상자 치료를 위해 너도나도 피를 뽑았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치공동체를 선보였다.

신군부 5·18학살 현장 지휘본부 역할을 한 505보안부대. 보안부대는 사전에 시나리오를 짜 놓은 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






● '피맺힌 항쟁' 광주 32곳 사적지 지정

민주주의를 향한 피맺힌 항쟁지였던 광주 곳곳이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전남대학교 정문은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곳이다. 5월 18일 학교에 들어 가려던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첫 충돌이 벌어졌다. 사적 1호다.

시민과 계엄군 사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광주역 광장은 사적 2호, 광주에서 시작된 항쟁이 전남 곳곳으로 확산되는 통로가 된 시외버스공용터미널 옛터가 사적 3호로 지정돼 있다. 금남로는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날마다 격렬하게 저항한 항쟁의 거리다. 20일엔 택시를 중심으로 차량 200여 대가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이 거리를 누볐다.

신군부 5·18학살 현장 지휘본부 역할을 한 505보안부대. 보안부대는 사전에 시나리오를 짜 놓은 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가 있는 민주광장 일대는 항쟁 중심 무대였다. 전남도청에선 항쟁지도부와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활동했다. 27일 새벽 공수부대 무력 진압에 맞서 싸운 시민군 최후 항전지도 여기였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주된 배경 가운데 하나인 상무관은 희생자 주검이 안치된 통곡과 애도의 공간이다. 상무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엔 시민들이 줄지어 희생자 넋을 기리며 민주화 의지를 다졌다. 민주광장에서는 시민들이 분수대를 연단 삼아 집회를 열며 항쟁 의지를 불태웠다.

민주광장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한국 민주주의 상징이 됐다. 광장 이름도 '5·18민주광장'으로 붙여졌다. 전일빌딩은 21일과 27일 군용 헬기로부터 수백 발의 총격을 받았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개방되고 있는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항쟁 중심지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었다. 부상자 치료를 위한 시민의 목숨 건 헌혈 행렬이 줄을 이었다. 양동시장에선 상인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며 함께 사는 대동세상, 광주공동체의 본보기를 보였다.

505보안부대는 신군부 5·18학살 현장 지휘본부였다. 사전에 시나리오를 짜놓고 온갖 고문을 동원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 전남북계엄분소가 설치된 상무대는 시민에 자행된 국가폭력의 현장이다.

5·18사적 1호 전남대 정문은 5월 18일 교문 앞에 모인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도화선이 됐다.






● 송정역광장, 조만간 사적지 지정

망월동 5·18묘역은 항쟁기간 희생된 영령들이 묻힌 곳이다. 희생자는 신군부에 의해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장례식도 없이, 손수레와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다. 광주시내 32곳이 5·18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조만간 송정역광장이 추가되면 33곳으로 늘어난다. 송정역광장은 수많은 시민과 시민군이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모여 연일 시위를 벌인 곳이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국가권력과 신군부의 정권 찬탈 음모에 맞서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 동안 광주·전남에서 펼쳐진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지난한 투쟁을 거쳐 지금은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신군부 폭력에 당당히 맞서 민주를 외친 시민은 민주유공자로, 희생자들이 묻힌 망월동 5·18묘역은 국립민주묘지로 새단장 됐다. 독재에 맞서 싸우는 세계 민중과 귀중한 경험을 나누며 우리도 그 정신을 시대과제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이돈삼 5·18기념재단 오월안내해설사, 전남도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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