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쪽은 파묵칼레, 뒷쪽의 큰 도시는 주도인 데니즐리, 중간에 석회암 민둥산이 인상적이다. |
![]() 파묵칼레의 남쪽에서 망원경으로 잡은 아침 풍경. 송림 우측은 고고학박물관이다. |
파묵칼레라는 지명은 튀르키예 관광을 다녀왔거나 가까운 장래에 계획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아무리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세계 5대 관광대국을 찾아 몰려들 때 파묵칼레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명승지라고 하더라도 내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우리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내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생각이 없으면 다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것처럼 파묵칼레는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서 자연적인 비경과 오랜 인류문화를 모두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일단 튀르키예를 찾은 세계의 관광객이라면 발을 딛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파묵칼레를 찾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면 반드시 훗날 다시 찾게 되는 곳으로 단정해도 된다. 그만큼 이곳은 산등성이에 드넓게 형성되었고 각종 관광 킬러콘텐츠로 도배되어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다 체험하자면 이틀은 족히 잡아야 한다. 만약 일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다면 산등이에서 더 높이 오르는 등산까지 해야 되니 그럴 경우 시간은 더 필요하다. 또한 2천년 전 클레오파트라가 입욕해 피부의 건강미까지 챙겼다는 클레오파트라 앤티크 풀 온천에서 힐링이나 미용체험까지 하자면 시간은 더 소요된다. 고대시대에 장기요양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귀족과 왕족들이 편안하게 하얀 천국인 북망산(히에라폴리스)에 묻혔는데 그들처럼 느긋하게 머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화이트 헤븐 호텔의 이국적인 조경. |
![]() 호텔 구내의 터키 유명 관광지 광고 안내판. 역시 관광대국의 면모를 보여준다. |
구내의 고고학박물관에서 역사문화관광에 매료되어도 시간은 마구 흘러갈 것이다. 특히 트래버틴 온천지구가 넓고 지형이 복잡한데 구석구석 답사하고 다양한 체험을 해도 시간은 유수처럼 빨리 지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뜨거운 온천수는 지형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과 속도로 흘러내린다. 석회석을 함유한 온천의 물줄기는 곳곳마다 바닥에 다른 물결무늬를 만들었고 수량에 따라 물웅덩이의 비색마저 조금씩 달리 보이는 천하의 비경이다.
이렇게 좋은 곳을 전날 석양에 도착해 서둘러 관광하고 어둠 속에서 북문으로 퇴장했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입장은 하지 않더라도 주출입구인 남문쪽 언저리에 가보고 싶었다. 카파도키아를 향해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는 일행에게 양해를 구해 남문 쪽으로 드라이브했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니 파묵칼레 전경이 보이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망원렌즈로 원경을 잡았다. 그리고 차를 돌려세워 장거리 이동을 시작했다. 파묵칼레에서 카파도키아까지는 광주~서울 왕복거리보다 더 먼 원거리이니 여행자의 심리는 쫓길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도중에 경유하는 코니아(콘야)는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수도인만큼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매력적인 관광도시이지만 시간상 과연 조금이라도 살펴보고 갈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외곽으로 지나가야 했으니 유명한 메블라나 박물관과 고건축물, 대상인들의 숙소인 ‘오브룩 한’ 등을 주마간산 격으로도 보지 못했다.
![]() 카파도키아 가는 길의 휴게소 풍경. |
파묵칼레라는 지명은 이곳에서 대량 생산되는 ‘목화(Pamuk)의 캐슬(Kale)’이라는 의미이다. 하얀 석회암 언덕이 하얀 목화로 만든 성채처럼 보여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의 숙소는 소도시 남쪽의 대로변에 자리 잡은 깨끗하고 시설이 좋은 ‘White Heaven Hotel’이었다. 세계적인 관광지답게 깔끔하고 멋진 새로운 호텔이니 100유로가 넘었고 그간 묵은 호텔중 가장 딜럭스했다. 그리고 호텔 안팎의 인테리어가 참으로 신기하고 맘에 들었다. 이 호텔은 이름 그대로 하얀 천국인 파묵칼레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린 조형물과 시각적인 디자인이 매력적이었다. 호텔은 한국의 육송 비슷한 곧은 줄기의 거송 그늘 아래 건축하여 대로변이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조경도 훌륭해 보였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고대의 왕족과 귀족은 온천욕이 필요한 질병을 얻으면 머나먼 이곳까지 찾아와 장기요양하면서 고향에 기세등등 귀환하기를 고대했다. 인명재천이듯이 모두가 다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력자인 그들은 부유했기 때문에 고상한 석관에 안치되었다. 최후까지 호사를 누린 것이다. 마지막 황천길도 눈부신 천국을 기대하며 그나마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임종까지 시종을 드는 하인들의 손길과 수발에 외롭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천국은 각 사람마다 이렇게 많은 비극과 희극을 담고 있다.
![]() 투박한 항아리에 매달린 각종 장식물이 이색적이다. |
![]() 고속도 휴게소에서 튀르키예인들이 다가와 호감을 보이니 친절도 분명 호사이다. |
온종일 가야 하는 카파도키아 길은 멀어서 단조로웠다. 중부고원지대의 대평원은 비옥하여 부러웠다. 그래서 고대부터 수많은 세력이 이 지역을 뺐고 빼앗겼다. 따가운 태양 아래서는 세계 생산량의 21%를 차지하는 살구가 영글어 가고 있었다. 구릉 위에서는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너른 들판에선 옥수수와 목화가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풍요로운 이곳에는 제비도 인가의 지붕 아래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냥 우연히 만나 터키인들도 다가와 사진 찍기를 청하였다.
다음 편은 별천지인 카파도키아 입성과 야외박물관 체험, 그리고 열기구 체험 등을 다룬다. 카파도키아는 역시 터키여행의 대미가 아닐 수 없다. 김성후 동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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