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 진주' 흥얼거리며 달려가는 대평원 장관
관광대국튀르키예를탐하다

'에게해 진주' 흥얼거리며 달려가는 대평원 장관

관광대국 튀르키예를 탐하다<13>파묵칼레

‘로마 게이트’라 불리는 도미티안 문. 서기 84~85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기려 건설됐다.
도미티안 문의 안쪽 주작 대로인 1.2km 아르카디아 거리 일부.


차나칼레 도심에서 1박을 한 후 근교의 트로이 유적지를 들른 다음엔 파묵칼레까지 곧장 직행했다. 트로이에서 파묵칼레 지역의 온천명소까지는 거의 500km나 되는 먼 길이다. 2/3 정도는 에게해의 해안이 들락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이즈미르 시까지 남진했다. 그곳에서 다시 남동 방향으로 더 주행해 튀르키예 지명으로 셀추크, 옛 지명으로는 에베소를 스치듯 지나 동진했다. 파묵칼레의 비경이 아스라이 보일 때 어떻게 감격하게 되는가 잔뜩 기대하면서….

에게해의 해안선은 멀리서 볼지라도 참으로 친근하게 스쳐 지나갔다. 여행 동료 한 사람은 앞으로 지중해의 더 멋진 해안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에게해의 먼 해안 풍경이 주는 정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에게해의 진주(Agean Pearl)라는 세계적인 명곡은 바르셀로나를 품고 있는 스페인 지중해 연안인 카탈루냐 출신의 가수 후안 마누엘 세라의 히트곡이다. 젊은 시절 이 노래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으니 그 곡조가 뇌리에 맴돌고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폴 모리아의 경음악 연주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노래의 정식 곡명은 ‘Penelope’이지만 ‘에게해의 진주’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해외 음악도 다양하게 소개되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이 노래는 젊은이들의 주요 애착곡이었다. 에게해의 진주라는 멜로디가 귀에 들리는 듯하니 에게해의 빛나는 해변에 잠시라도 들려보고 싶었지만 여행 일정상 불가라는 제지를 받았다.

히에라폴리스의 야외 고고학 유적군.
■ 에게해변과 대평원의 옥수수밭을 달려 파묵칼레에 도착하다

셀추크 북쪽 근처에서 E87 고속도로를 계속 달렸는데 이제야 대륙 안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럽 전역의 고속도로는 주로 ‘E’로 시작되는데 프랑스 국경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E15’이다. 유럽의 대부분 지역(27개국)이 쉥겐조약에 가입되어 국경이 개방되어 있으니 도로체계도 통합해야 되는 것이 마땅하다. EU 국가가 아니라도 쉥겐조약에 가입된 경우도 있어 유럽의 통합은 여행객의 발길을 차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럽을 다닐 때마다 복잡한 국가간의 갈등 때문에 세계대전마저 두 번이나 치른 유럽인들이 이제는 통합과 소통에 대한 집념과 지혜를 보여 주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에게해 해변에서 아나톨리아반도 내륙으로 꺾어 들어간 이후로는 광활한 대지의 옥수수, 해바라기, 목화, 감자밭이 장관이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농작물이 무성히 자라고 있으니 그 풍요로움에 감탄했다. 이 넓은 대지가 온통 비옥하고 대평원을 이루니 곡창지대로서 보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제국이 시대마다 이 대지를 제패하며 수천년간이나 그 지배권이 바뀌었다.

히에라폴리스의 석관 무덤 군집 장소. 둥근 봉분의 한국식 무덤도 보인다.
지난주에 소개했듯이 기원전 1,250년 경에는 그리스의 미케네 왕국이 트로이를 멸망시켰지만, 그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아예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는 물론 인도까지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고자 했다. 몽고제국도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등 이 땅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파묵칼레 보다 더 안쪽인 카파도키아 일대에서는 고대에 수만명의 사람들이 전쟁 피신용 복잡한 지하세계를 건설할망정 멀리 도망가지 않고 물려받은 땅을 지켜냈다.

파묵칼레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는 우리나라보다 강수량이 적으니 논은 보이지 않았다. 밭으로 충분히 활용하니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단조로운 밭농사 지대이니 다른 자연적 특징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 찍을 것도 없었다. 단지 대평원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주유소에서 현지 휘발유 가격을 표시한 광경을 앵글에 담았을 뿐이다. 기름값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니 그들 경제수준에서는 우리나라보다 1.5배 정도로 비싸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도 고속도로 통행료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나라는 극심한 중앙집권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수시로 서울에 다녀야 하는데 거위가 털을 슬슬 뽑히듯 교통비로 털리고 있다. 고소득 국가인 미국만 해도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는데 우리는 비싼 고속도로 통행료를 그럴싸한 명목으로 뜯기고 있으니 이는 지역민에 대한 역차별이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 자동차로 왔을 때 중앙집권제를 탈피하지 못한 댓가로 지역민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유비를 되려 보전해 주는 발상은 할 수 없을까?

트로이에서 파묵칼레 가는 길의 풍요로운 옥수수밭.
■ 황혼에 히에라폴리스에 도착하고 어두워 퇴장하다

해어름에야 파묵칼레에 도착했는데 시가지가 형성된 남문주차장이 아니었다. 고대로마시대의 공동묘지인 히에라폴리스가 있는 후문주차장인 북문(North Gate)에서 진입했다.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는 바로 붙어 있으니 어느 쪽에서 입장해도 무방하나 대부분은 남문으로 입장한다. 튀르키예는 가는 곳마다 관광지 입장료가 있지만 이왕 동방 형제국에서 먼 여행길을 떠나왔으니 가능한 한 아깝다고 빠뜨리고 갈 일이 아니다.

30유로의 입장료는 4만5,000원인데 동료는 2~3년 전에 700리라(2만8,000원)의 입장료를 낸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사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터키의 인플레이션율은 우리가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지금이 가장 싸다고 믿으면 틀림이 없는 것이 경제학적 사실이다. 터키의 인플레이션은 거의 20%로 보면 되는데 경제가 불안한 편이다. 그러니 해마다 입장료가 눈에 띄게 오를 수밖에 없다. 내국인들이야 인플레에 따라 입장료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유로 통화 입장료마저 천정부지로 오르니 관광세를 톡톡히 걷는 셈이다. 그래도 세계 6대 관광대국의 세계적인 수요는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터키관광의 매력도가 높다는 뜻이다.

다음 주에는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의 야외 고고학 유적군을, 그 다음주에는 석회암의 일종인 트래버틴 온천지대인 파묵칼레의 비경에 대한 여행담을 소개할 것이다. 김성후 동신대 명예교수

파묵칼레 가는 도로상의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1,700원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파묵칼레 유적지 북쪽 매표소. 입장료 30유로 안내판과 한글 안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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