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시난, 애절·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모스크 건축 헌납
관광대국튀르키예를탐하다

건축가 시난, 애절·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모스크 건축 헌납

관광대국 튀르키예를 탐하다<5> 이스탄불 구시가지

예니 모스크 광장의 므스르 차르슈 바자르 입구. 연중 관광객 등 인파가 넘쳐난다.
예니 모스크와 점심을 먹은 Bi’ mola Cafe 노천식당 겸 카페.
◇갈라타 다리 건너 마주하는 관광명소들·넘쳐나는 관광객

그 유명한 갈라타 탑에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이스탄불의 풍경을 관조하며 눈이 호사를 누리고 이제는 금각만의 갈라타 다리를 건넜다. 구시가지인 파티흐 지역의 낮은 언덕에는 모스크와 미나렛이 널려 있는데 다리를 건너자 마자 해변에도 예니 모스크가 앞을 가로 막았다. 첨탑이 2개이므로 장군급의 모스크인데도 그 내부의 돔 천장, 각종 문양과 캘리그래피는 웅장했다. 첨탑이 4개인 술탄급의 모스크와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6개 미나렛의 블루 모스크는 다음날에 예정되어 있는데 이들 세계적인 건축물들에는 얼마나 감탄을 하게 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모스크 일대는 광장과 므스르 차르슈 바자르, 일반상가가 모여있는 다중지역이다. 그래서 일년 내내 관광객, 쇼핑객, 산책객들로 인파가 붐빈다. 광장에는 사람을 따라 군무를 추는 비들기떼도 넘쳐난다. 터키 어느 지역에서나 비들기떼가 인간과 공존하는 광경이 놀라웠다. 우리 일행도 Bi’ Mola Cafe의 노천식당에서 튀르키예의 전통음식인 케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곳은 Coca Cola의 빨간 간판으로 도배돼 있는데 튀르키예의 국기가 같은 색깔이니 오히려 매칭이 된다고 보였다. 코카콜라 간판은 이제 한국에서는 퇴출되다시피 했는데 아직도 다국적기업의 마케팅 위력은 대단하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의 참배객 무리가 경건하고 한가롭다.
◇오스만터키 이슬람 대제국시대 대건축가 시난의 예술혼과 절절한 사랑 이야기

예니 모스크 광장 저편의 뤼스템 파샤 모스크는 불과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데 16세기 쉴레이만 1세 시대에 대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당대의 재상이었던 뤼스템 파샤의 명으로 건설한 모스크로 알려져 있다. 이 재상은 황제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 모스크는 방대한 양의 우아한 타일로 건물 내외부가 여러 가지 꽃무늬로 뒤덮여 있는데 그건 건축학 등에 관심있는 사람에게나 호기심을 안길 뿐이다.

신성한 모스크에는 미마르 시난의 애절하고 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야사로 전해진다. ‘미마르’라는 이름은 건축가를 뜻한다는데 실제로 시난은 수많은 이슬람 건축물에 혼을 기울여 이슬람 건축미의 일가를 이룬 영감의 천재이기도 했다. 그는 계율이 엄격한 이슬람 제국의 공주를 마음속으로 99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모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꽃처럼 아름다운 공주를 위해 꽃무늬로 오롯이 장식한 모스크를 온 정성을 다해 건축했단다. 그러나 공주에게 헌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공주의 남편 이름으로 헌납했다니 공주의 발길과 체취가 그 모스크에 머물 때 그의 마음은 촉촉해졌을 것이다.

한편 시난이 자비를 들여 이 모스크 건축을 시작했을 때 엄청난 공사비를 일시에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에 상가를 계속 지어 그 임대수입으로 공사를 이어갔다. 이런 연유로 모스크는 공사비를 벌어준 상가 건물 위층에 지어졌다. 이런 시난의 절절한 사랑이 영롱하게 새겨진 모스크는 지상에서는 규율에 따라 외탑, 즉 하나의 쓸쓸한 미나렛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신분의 벽을 초월한 내세에서는 천상의 사랑을 이루어 쌍탑 모스크를 알라신에게 헌납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만하지 않은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결하고 아리땁고 지체 높은 여인을 흠모하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이런 러브스토리는 예술작품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주인공은 짝사랑에 그 얼마나 아픔을 느꼈을지 그저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이스탄불의 쇼핑 메카이자 여행 버킷리스트인 그랜드 바자르는 일요일에는 휴장이었다. 그 엄청난 규모를 꼭 체험해 보고 싶었었다. 미로같이 복잡해 수많은 입구로 되돌아 오기도 어려운 곳이라서 더욱 구미가 당겼지만 당장 체험할 도리는 없었다. 그래도 대안으로서 예니 모스크 바로 옆 므스르 차르슈 바자르(일명 이집션 바자르) 안에는 향신료, 꽃차, 꿀, 과일, 기타 차와 간식거리가 다양하고 인파로 활기가 넘쳐났다.

므스르 차르슈 바자르 내부의 붐비는 인파.
◇아직도 로마시대 높은 수도교에서 빗물이 흐를 수 있을 듯

고대 로마시대 토목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발렌스 수도교는 역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2000년의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다 겪고도 그 견고함이 현대까지 이어지니 로마시대 장인의 정신과 기술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로지 돌로만 자재를 사용했고 높은 표고 차를 극복하기 위해 그 높이가 아찔한데도 유적지로 남았으니 역시 인류의 유산으로서 대단하다. 더욱 감동한 점은 유적지 주변을 넓게 숲공원으로 조성한 도시계획의 진수였다. 나무 이야기 책을 쓴 필자에게는 공원의 장대한 플라타너스 거목들이 장관인데다 초록 보물로 다가왔다. 튀르키예 어디에서나 웅장한 노거수는 죄다 양버즘나무라는 플라타너스 나무였다. 한국에서는 너무 커서 위험하다고 다 제거하는 판인데 이곳에서는 문화생태적 보물이다. 큰 나무는 신록을 드리우고 그 그늘과 미풍은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니 참으로 부러웠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옆의 쉴레이만 1세 영묘 묘지.
로마 대 건축술의 백미인 발렌스 수도교 유적지.
◇쉴레이만 대제의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와 영묘, 그리고 건축가 시난의 무덤

귀로에 다음날 탐방할 아야 소피아 대모스크,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와 함께 이스탄불의 3대 모스크인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를 찾았다. 쉴레이만 1세의 명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왔다. 건물의 높이는 53m지만 4개인 첨탑 높이는 무려 72m나 된다. 돔의 직경이 26.5m나 되니 갈라타 탑에서 전망하면 역시 이들 3대 모스크가 가장 큰 위용을 자랑하며 스카이라인에서 하늘로 돌출하고 있다.

1557년에 완공되었는데 건축가는 위에서 언급한 애절한 사랑의 사나이 미마르 시난이다. 이 모스크를 건축할 때는 시난은 아마도 잡념이 없이 종교적 헌신에 몰입했을 테니까 오랫동안 건축상의 구조적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쉴레이만 1세와 황후 휴렘 술탄의 묘가 모스크 옆의 뜰에 자리 잡고 있다. 흔히 영묘라고 불리는데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그들의 영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 미마르 시난의 묘도 모스크 옆에 있는데 찾아가 보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컸다. 시난은 지상에서 황제 부부가 죽을 때까지 가까이 모시며 공주 곁을 맴돌았으니 천상에서는 사위의 연을 맺지 않았을까 흐뭇하게 상상하는 것도 여행의 묘미였다. 시난의 묘 옆에는 이스탄불 3대 카페인 시난 카페&레스토랑이 있는데 옥상의 전망은 높은 탑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하다. 그곳에서 공주 연애론이나 이스탄불 사원건축 예찬론으로 담소할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싶다.

다음 편은 한국인 및 튀르키예 가이드와 함께 아야 소피아, 블루모스크, 토카프 궁전 등의 구시가지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이야기다. /김성후 동신대 명예교수

이슬람 대건축가 시난의 무덤과 3대 유명카페인 시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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