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곳] 전주 자만벽화마을 “낡은 담벼락, 미래 세대 생동감 품다 - 전남매일
[가볼 만한 곳] 전주 자만벽화마을 “낡은 담벼락, 미래 세대 생동감 품다
월간전남매일

[가볼 만한 곳] 전주 자만벽화마을 “낡은 담벼락, 미래 세대 생동감 품다

세 차례 변화...동심과추억 다 잡은 지붕 없는 미술관
과거 어둡던 피난민 아픔 사라지고 화려한 벽화로 비상
방문객 위해 빈집,허물어진 담장에 미니어처로 포토존 꾸며
거주민 “사람들 많이 들러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가볼 만한 곳] 전주 자만벽화마을 “낡은 담벼락, 미래 세대 생동감 품다

세 차례 변화...동심과추억 다 잡은 지붕 없는 미술관
과거 어둡던 피난민 아픔 사라지고 화려한 벽화로 비상
방문객 위해 빈집,허물어진 담장에 미니어처로 포토존 꾸며
거주민 “사람들 많이 들러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글·사진 민슬기 기자

■피난들이 정착한 달동네 자만마을

도로 하나를 두고 극과 극인 곳이 있다. 바로 전주 한옥마을과 자만마을이다. 전국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방문하느라 시끌벅적한 한옥마을과는 달리 자만마을은 고요하다. 같은 시간, 다른 세상이다. 이곳은 6.25 전쟁이 끝난 뒤 피난민들이 정착한 달동네다. 마을 이름인 ‘자만’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뒤로하고, 많은 자손들이 대대손손 번영하라는 뜻이 담겼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기 바쁜 부모 대신 코흘리개 어린이들을 품었던 승암산. 그 능선 아래 여전히 촘촘하게 낮은 담장들이 서 있다.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잘만 뛰다니던 아이들은 볼 수 없어진지 오래다. 이제는 거주자들보다 빈집이 많다. 근대화, 산업화를 맞아 쇠락했고, 주민들은 더 나은 동네나 큰 도시로 떠났다. 서릿발처럼 머리카락도 기억도 희끄무레한 노인들과 원거주자들 몇몇이 터주처럼 남아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2012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주시가 2011년도부터 행정안전부의 공모사업 일환으로 자만마을 담장 벽화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자손의 번영을 바랐던 마을의 이름 덕인지 그저 자연의 지고한 섭리만 기다리던 달동네가 만대한 후손들로 인해 자만마을이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3차례의 도약…자만마을에 활기를

전주시는 자만마을이 시작되는 오목교 육교를 포함해 한옥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전주의 혈맥을 잇고 있으나 노후화되고 삭막한 오목교 육교의 난간 보수 및 도색, 벽화작업 등을 통해 화려하게 단장 했다. 을씨년스럽던 낡은 담장은 화사하게 변했고, 마을재생사업 일환으로 주민들도 참여했다. 직접 꾸민 벽화들은 어두웠던 골목길을 환하게 만들었고 자부심을 갖기 충분했다. 낯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작은 달동네가 잠시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보수 작업이 필요한 곳이 생겼고, 인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지역예술인들이 몇 차례 보수와 교체를 시도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이에 2017년 전주 풍남동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만화길 골목 조성 사업을 추진했다. 공포의 외인구단, 슬램덩크 등 익숙한 캐릭터가 벽 위에 그려졌다. 지브리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카툰네트워크사의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 등 전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캐릭터로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조성 됐다. 전주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20 전주벽화 트리엔날레’를 통해 20명의 작가들을 초청,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눈을 사로잡는 예술작품들로 마지막 도약을 시도한 것이다. 동심, 동화 속 이야기, 풍경, 추억 등 다양한 주제로 자만마을 전체를 채색했다. 나선미 작가의 ‘꽃보다 할매-엄마의 빨간다라이’, 강창구 작가의 ‘자작나무숲’, 전용훈 작가의 ‘파라다이스’, 로로아트플랜의 ‘다 잘될거야!’ 등 한번 더 눈이 가는 그림과 아이디어로 거대한 미술 갤러리를 탄생 시켰다.

■직접 가보니….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들어진 동네이기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위쪽으로 층층이 보이는 집과 담벼락에 온통 벽화가 그려진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다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골목길 사이사이로 들어가봐야 안다. 분명 좌우로 비비드한 컬러의 벽화를 잘 살피고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옆 골목으로 내려오다보면 이전 골목에서 놓친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도깨비 장난인게 틀림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
가장 인상적인 벽화는 이영식 작가의 ‘사랑해요 자만마을’이라는 작품이었다. 백색 벽면은 강아지로, 창문은 선글라스로 동화시켜 마치 유쾌한 강아지가 자만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5060세대들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벽화는 나선미 작가의 ‘꽃보다 할매-엄마의 빨간 다라이’ 작품이다. 억척스럽게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웃음 앞에서 그 나이대가 된 그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벽화만큼이나 눈에 띈 점은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서두르던 귀갓길을 잠시 멈추는 거주민과 방문객들을 위해 무너진 담장이나 폐허가 된 집 등에 미니어처 등 자그마한 악세사리로 포토존을 꾸며놓은 솜씨였다. 익명을 요구한 68세 거주민 할머니는 “예쁘게 꾸며놓으니 좋은데 이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들리지 않아 서운하다”고 말했다. “낮에는 시끌시끌해도 괜찮다”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러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생생한 벽화와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에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다 보면 어느새 마을 한 바퀴를 다 돌게 된다. 이번 봄, 고급스러운 명화나 전시가 있는 미술관이나 전시관보다 활력있는 삶터로 변한 자만마을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정비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길은 아쉽지만, 추억 가득한 벽화를 통해 동심을 잔뜩 가져갈 수 있다.
민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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