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씨네코뮌 <5>촉각적 장치로서의 비디오
김지하의 씨네코뮌

김지하의 씨네코뮌 <5>촉각적 장치로서의 비디오

행위와 과정의 예술 표현 액티비즘으로 확장
비디오아트 ‘거울효과’ 활용 예술
백남준의‘TV 부처’ 대표적 작품
매체적 특성 활용 비디오 액티비즘
‘노동자뉴스제작단’좋은 사례
미디어 통한 사회적 실천 상징

백남준 ‘TV 부처’/출처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2만7,000개의 비디오테이프가 빼곡하게 쌓아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에서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의외의 포토존이 있다. 아날로그 TV와 연결된 비디오카메라는 카메라 렌즈 앞의 모습들을 TV 모니터를 통해 비추고 있다. 전시 공간을 둘러보는 관객들을 비추기 위해 설치한 그곳에 관객들은 지나치지 않고 오히려 멈춰선다. 그리고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는다. 셀프카메라와 뽀샵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에서 흐릿하고 불완전해 보이는 모니터 속 자신이 낯설고 새롭게 보이는 것일까. 관객들이 많을 때는 줄을 서서 대기하는 이 포토존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시대와는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비디오의 본질적 속성을 생각할 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디지털 이전의 비디오테이프, 비디오카메라는 이전 매체와는 다르게 독립적으로 재현해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TV를 통해서만 발현되는 비디오는 언제나 자신을 대상화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라캉이 말하는 거울 효과와 같이 자신과 자신의 대치물을 동일시하거나 혹은 다름의 간극 사이에서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비디오아트는 비디오의 이러한 속성을 활용한 예술 장르로, 초기 비디오아트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백남준의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다.

‘TV부처’ 설치 중인 백남준
백남준의 ‘TV 부처’는 대상만 다를 뿐 전시장 안의 비디오 포토존의 설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TV 속 부처를 바라보는 부처상은 가상과 실재, 서구의 기술문명과 동양의 정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건축가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비토 아콘치의 작품 ‘중심’은 더욱 직접적이다. 작가는 비디오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며 카메라 렌즈를 주시한다. 하지만 작가의 몸은 서서히 비틀어지면서 약 20분 만에 비디오와의 눈싸움에서 지고 만다. 미세한 떨림도 없는 기계와의 싸움에서 무기력해지는 작가의 모습을 본 관객은 이 바보스러운 상황을 지켜본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지만 결국 작가의 겨냥은 비디오가 아닌 관객 자신에게 향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곧 관객에게 향하는 작가의 손가락은 어떠한 의심이나 사고의 흐름 없이 맹목적으로 기술을 수용하고 이를 이용한 미디어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황들을 지적하고 있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비판적 사유는 기계적이면서도 심리적인 장치로서의 비디오 미학으로 만들어지며, 대상은 또 다른 나 혹은 관객, 더 나아가 미디어, 미디어 사회를 지시한다. 그렇기에 비디오는 행위와 과정의 예술로써 표현되며, 기록과 관찰의 대상을 다루는 특성에서 액티비즘의 영역까지 자연스럽게 넓혀나갈 수 있다.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동자뉴스 비디오
비디오 액티비즘은 자기반영성이 뛰어난 비디오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하여 주체와 타자의 전통적 관계에서 생성된 문제의식을 표현한 초기 페미니즘 비디오에서 두드러졌다. 한편, 누구나 다루기 쉽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보다 활동적으로 나아가려는 사회운동의 활용 매체로도 매우 유용했다. 1989년 출범하여 국내의 대표적인 노동영상들을 만들어오고 있는 ‘노동자뉴스제작단’도 국내 비디오 액티비즘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유튜브 등에서 돌아다니는 가짜뉴스는 최근 몇 년간의 문제는 아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적인 언론 미디어는 오래전부터 권력과의 강한 유착관계를 보여왔고 이러한 제도언론과 지배권력의 유착관계에서 형성된 뉴스는 특정 계층과 권력에 편향적인 프레임을 구성하게 된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의 활동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사회의 왜곡과 축소를 바로잡기 위한 대안적 미디어 운동으로서 비디오라는 도구를 끄집어낸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기록성과 활동성이 뛰어난 비디오 매체를 통해 뉴스를 제작해왔다는 점은 미디어의,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의미 실천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미디어가 현실을 구성하고 재현하는 과정에 권력의 개입을 파악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독해하면서 자신들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앞서 서두에서 비토 아콘치가 조롱당한/당할 우리가 되지 말자고 몸소 보여준 경고를 실천적이고도 능동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의 미학적 방식으로 재제작하고, 나아가 새로운 정보생산과 유통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련의 흐름은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지향했던 사회적 실천을 비디오액티비즘, 홍보영상, 영화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한국 비디오 역사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비토 아콘치 ‘중심들(CENTERS)’ (1971)
지금까지 5회에 걸쳐 비디오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아보았다. 사적인 비디오, 사회적 비디오,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가 소비해 온 비디오는 약 20여 년 동안 많은 임무를 수행하고 사장되었다. 그리고 그 유산은 유튜브,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플랫폼들에서 더욱 세련되고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사회적으로, 예술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논의되고 있다. 아울러 문화예술에서 비디오를 포함한 재현의 역사들이 줄곧 강조하고 발전시켜왔던 비판적 태도가 새로운 미디어에서 어떤 식으로 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인한 징후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관객에게 유아기 감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장비가 빠진 작품의 사유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장 내 비디오 포토존
‘노동자뉴스제작단 30주년’ 특별프로그램 포스터/ACC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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