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공자는 실용성을 지향한다 (2)
인문학으로세상보기

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공자는 실용성을 지향한다 (2)


학문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실용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동물이 아닌 인간의 실용 범주 또는 대상은 물질에 한정되지 않는다. 복잡한 이성을 갖추고 있는 이상, 인간의 실용 대상에는 당연히 정신의 영역도 포함된다. 물질 향상은 물론 정신 향상에도 도움이 안되는 노력이나 행위라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야말로 공허하고 비실용적이다.

그리고 실용을 추구하는 데 있어 물질에 무게를 둘 것인가 정신에 무게를 더 둘 것인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신을 더 채워야 할 상황이면 정신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고, 물질이 다급하다 하면 물질을 더 추구해야 할 것이다.

물질이 다급한데 정신만 강조하고 있으면 공허하고, 정신이 문제인데 물질만 강조하고 있으면 그것 역시 비현실적이다. 한마디로 학문이 사회에 적절한 솔루션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인간은 육체와 이성을 함께 지닌 존재인 만큼 사회가 아무리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 상태라 할지라도 물질 추구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고, 반대로 아무리 물질적으로 궁핍한 상태라 할지라도 인간의 존엄과 사회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정신 향상의 노력은 언제나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문은 물질은 물론 정신의 향상을 위해, 즉 두 가지 속성의 인간적 실용(實用)에 끊임없이 도움이 되어야 한다.

물론 시대상황에 따라 물질과 정신 영역에 대한 적절한 비중조절을 하면서. 그럴 때 학문은 실용적인 학문, 즉 실학(實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신에 비중을 둘 것인가 물질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 또는 다른 어떤 것을 강조할 것인가는 현실에서 누가 결정할까? 그것은 학문 생산자 또는 그 시대의 권력자이다.

학문은 실용에 도움돼야

그리고 학문 생산자 또는 권력자에게 있어 자기 생각과 자기 노력이 일치하는 한 그것은 일반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들에겐 실용적인 학문, 즉 실학이 된다. 따라서 실학은 절대적·고유명사적 개념이라기보다 상대적·보통명사적 개념이다.

공자(BC551-BC479)는 당시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아니 불과 몇십년 전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상당히 높을 때의 농촌사회를 상상해보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불과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적지 않은 경우 그 원인이 무지 때문이었다.

오늘날 국가 또는 사회 간에 민도 차이가 존재한다. 질서와 배려 등에 있어 수준 차이가 있다.

민도 차이의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교육이다. 2,500년전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오늘날과 같이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무교육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당연히 일부 귀족 빼놓고는 문자를 알지도 못했고 또 당장 오늘 하루 먹을 것, 몸 가릴 것 마련에 쫓기는 생계 위협 속에서 예禮나 체면을 따질 상황도 못되었다.

공자가 '짐승과 함께 무리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누구랑 함께 할 것인가'라고 내뱉은 한탄은 당시 일반인들의 도덕·의식 수준이 짐승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공자는 '널리 배워 예로 집약한다'라고 하여 배움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짐승과 다른, 즉 인간으로서의 기본인 예를 갖추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고, 번지가 농사에 대해 물었을 때는 '나는 늙은 농부만 못하고 나는 늙은 채소 키우는 이보다 못하다'라고 말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물질 향상을 가져오는 지식 전달과 같은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람들의 무지몽매함을 깨우쳐 예와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귀족 출신으로 혼란시대인 춘추시대를 다시 봉건 초기의 질서 있는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과 함께 아직 문명화가 되지 않은 무지 상태의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공자는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도리 가르치는 것

공자에게 당시 현실적으로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즉 가장 실용적인 것은 다름 아닌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춘추시대의 공자에게 실학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따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논어·맹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실학이었다. <끝>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