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공자는 실용성을 지향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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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공자는 실용성을 지향한다 (1)

'근사록'은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희(1130-1200)가 친구인 여조겸(1137-1181)과 함께 쓴 성리학 입문서다.

주희의 성리학 하면 사람들은 흔히 '관념적', '비실용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정작 저자 본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리학은 오히려 그 반대다.

여조겸은 '근사록' 후서(後序)에서 '낮고 가까운 것을 싫어하고 높고 먼 것에만 노력을 기울이거나, 차례를 뛰어넘고 절차를 무시해 공허한 데로 흐르게 되면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근사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보는 자는 마땅히 이것을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주희&여조겸, 근사록, 2012, 홍신문화사, 21-22면)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에서 먼 것을 추구해 공허한 데로 흐르면 안된다는 가르침이다.

주희·여조겸의 '근사록'

'근사록'내용 안에서도 '책 내용을 기억하고 암송하여 넓게 알기만 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본 뜻을 잃는 것과 같다'(以記誦博識 爲玩物喪志, 주희&여조겸, 근사록, 2012, 홍신문화사, 91면)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책 내용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은 그것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어떤 쓰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상생활에 응용되지 않는 지식, 인간의 삶에 도움 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로 이해할 수 있다.

책 제목인 '근사록'의 '근사(近思)'는 주희가 다름 아닌 '논어'에서 가져왔다.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 자하가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히 하여 절실히 묻고 가까운 것을 생각(近思)하면 그 가운데 인이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논어3권, 2003, 학민문화사, 455면)라고 말하는 내용에서다.

학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먼 것'이 아닌 '가까운 것(近)', 즉 자신 또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 관련되는 것을 '생각해야(思)'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바로 타인의 입장을 자기 일처럼 살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仁)이라는 것이다.

흔히 과거 동양의 학문 경향을 사람들은 관념적, 추상적이라고 많이 생각한다. 공자, 맹자의 사상이 현실과 괴리가 있고, 주희의 성리학이 공리공론적이어서 바로 동양의 근대화를 늦추는 요인들로 작용했다는 생각들이 바로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학문은 가까운 것에서

관념적이냐 현실적이냐의 단순한 관점으로 따진다면 서양 역시 관념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것은 모방이고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머릿속의 개념은 진실이라고 하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가 그렇고, 칸트의 '순수이성', 헤겔의 '세계정신'과 같은 개념들이 다 그렇다.

헬레니즘 시대의 수학자인 유클리드(BC330?-BC275?)와 같은 인물은 아예 대 놓고 '공자 말씀'(?)을 하였다. 유클리드는 자신의 증명법을 듣고 한 제자가 기하학을 배우면 어떤 이익이 있냐고 묻자 노예를 불러 '저 젊은이에게 3펜스를 주어라. 저 친구는 자기가 배운 것에서 꼭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니까'(Give the young man three pence, since he must needs make a gain out of what he learns)(Bertrand Russell, The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72, A Touchstone Book, 211p)라고 말했다.

빼고 더할 것도 없이 공자의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군자는 옳음을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만을 생각한다, 논어1권, 2003, 학민문화사, 323면)의 서양 버전이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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