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문명은 도둑질로부터 시작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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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문명은 도둑질로부터 시작되었다(3)

서양정신의 출발인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인간 문명 자체가 바로 '도둑질'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불' 사건이다. 제우스는 티탄들과의 10년 전쟁 끝에 올림퍼스 신전의 왕좌를 확보한 다음 자기를 편들었던 쌍둥이 티탄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를 불러 인간과 동물을 만들도록 명령한다.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으로 신의 모습을 본 떠 인간 남자를 만든다. 다 만들고 난 다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남자에게 줄 선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인간 남자 하나를 공들여 만드는 동안 동물을 만든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자신이 만든 동물들에게 제우스의 선물들을 모두 다 나눠 줘버렸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인간에게 불을 나누어 줄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제우스는 반대한다.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갖다 준다. 문익점이 붓두껍 속에 목화씨앗을 감춘 것처럼 프로메테우스가 속이 빈 회향목 줄기에 넣어 훔쳐온 불은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 문명은 '밝은 문명'만이 아니었다.

불을 사용하므로 익힌 음식을 먹게 된 인간은 생명을 늘릴 수 있게 되었고, 쇠를 녹여 노동수단을 만듦으로 더 가볍고 따뜻한 옷, 그리고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



육체적 필요가 충족되자 인간은 여유와 함께 정신적 욕구를 갖는다. 여유와 정신적 욕구는 새의 지저귐보다 맑은 음악을 만들고, 무지개보다 황홀한 그림을 만들고, 꽃의 몸짓보다 아름다운 춤을 만들고, 불타는 황혼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시를 만든다. '밝은 문명'이다.

그런데 사실 '에피메테우스의 불'은 '훔친 것'이 아니었다. '훔치게 한 것'이었다. 신 중의 신 제우스가 자신보다 하급 신인 '프로메테우스의 불' 도둑질을 모를 리가 없었다. 즉 제우스 스스로가 계획한 사건이었다. 종교에서 모든 일을 신의 계획된 의도로 이해하듯이, 이 '프로메테우스의 불' 사건은 제우스의 계획된 의도였다.

헤시오도스가 신통기에 '제우스 신은 인간들에게 슬픈 불행을 안겨줄 요량으로 불을 숨겨놓으셨던 것이다. - 중략 - 제우스 신은 그 도둑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불은 너 자신이나 이후에 태어나게 될 인간에게 큰 고통이 되리라. 인간들 모두가 불을 얻어 기쁨에 겨워하겠지만, 나는 그 불에 대한 대가로 인간들에게 평생 불행을 껴안고 살아가게 만들 재앙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노라"'라고 남긴 내용처럼.

불은 인간에게 기쁨, 즉 '밝은 문명'도 가져다주었지만 재앙, 즉 '어두운 문명'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불로부터 시작된 인간을 위한다는 기술이 오히려 8천만명의 살상이라는 대 참극을 낳은 20세기 전반의 인류적 불행이나, 불로부터 시작된 자기중심적·인간중심적 편리 추구가 생명의 터전인 지구 자체를 파괴할 지경에 이른 상황, 바로 제우스의 저주, '어두운 문명'이었다.

사실 문명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이기적이다. 인류 또는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을 위한 것이기 보다 일부의 탐욕을 앞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명이 인류 또는 생명 가진 것들 모두에게 언제나 긍정적이지는 않는 이유다. '밝은 문명', '어두운 문명' 모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도둑질'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문명·문화와 도둑질과의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기술 스파이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이나, 논문이나 소설, 노래, 그림, 방송 프로그램 등 지식과 아이디어를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는 표절 시비가 다 그렇다.



지적재산권의 등장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도둑질로 규정될 범주가 확대되고 또 도둑질에 대한 응징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적재산권 개념의 등장을 경계로 해서 그렇다. 지적재산권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반적으로 도둑질 대상은 물질에 한정되었었다. 남의 지식이나 아이디어와 같은 것들을 그 사람의 동의 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비난과 윤리의 대상일 뿐, 응징이나 법률적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지적재산권 범위가 앞으로 계속 확대되다 보면 언젠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마다 항상 지적재산권 침해 여부를 의식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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