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남의 것을 훔쳐온 이를 위인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책 읽기를 잠시 멈췄었다. 물론 목화 씨앗을 가지고 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옷을 따뜻하게 해 입을 수 있게 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린 나이에 아무리 다시 생각해보아도 남의 것을 몰래 가지고 온 행위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목화 씨앗을 몰래 들여온 문익점
물론 지금 같으면 '정직'이라는 것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이고 또 공리주의功利主義적 관점이 어떻고 원칙주의적 관점이 어떻고 복잡하게 여러 가지로 따져보겠지만, 이제 겨우 도화지 같은 머릿속에 유채색의 그림들이 하나 둘씩 자리잡기 시작하는 어린 때였다. 밥 먹듯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선생님으로부터 정직해야 한다, 거짓말해서는 안된다와 같은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있던 아이 입장에서 편하게 머리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 못되었다. 중국 사람들의 목화 씨앗을 그들 몰래 가지고 나온 것은 백번을 생각해도 올바른 일이 아니었다. 명백한 '도둑질'이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에 의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의 마이센, 프랑스의 리모주,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 헝가리의 헤렌드 자기 등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일본 도자기가, 아리타야키의 도조 이삼평, 아리타 도예의 어머니로 불리는 백파선, 사쓰마야키의 도조 심당길과 같은, 바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일본의 도자기 문화가 결국 조선으로부터의 '사람 도둑질'로 시작된 셈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 또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1759년 설립되어 1852년 현재의 자리로 옮긴 대영박물관은 소장 유물이 1,300만점에 이른다.
그런데 그 중 적지 않은 소장품이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다. 이집트, 그리스, 중동 아시아, 중국 등 그 범위가 전 세계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역사는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중국 등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일천하다.
영국·프랑스 문화는 강탈에서
그럼에도 세계의 문명사·문화사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영국에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기 고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것, 즉 '약탈해 온 것들'로 채워진 공간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역시 대영박물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르봉 왕조(1589-1792)와 나폴레옹 1세(1804-1814) 때 이집트, 중동 등 프랑스 외부에서 가져온 소장품들이 적지 않다. 역사도 영국처럼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AD481년 프랑크로 건국된 이후 AD 843년 서프랑크로 분국되어 지금의 프랑스로 이어지니, 이집트, 페르시아 등의 역사와는 길이와 깊이에서 비교가 안된다. 오늘날 문화 선진국임을 자랑하지만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의 르네상스 이전 것들은 당연히 유구한 역사의 이집트 등 외부에서 '강탈해 온 것'들일 수밖에 없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을 자랑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는 '강탈'에서 시작되었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