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황제의 역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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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 박사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세상보기> 황제의 역사 (3)

카이사르가 끝내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와 닮았다. 중국 위진남북조(221-589) 시대에 위나라 창업자 조조가 '천자를 끼고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挾天子 令諸侯)하여 실제적으로는 황제와 다름없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끝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절대 군주인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에 있어서는 이름 그대로 사실 황제였다.

플루타르코스가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모두 카이사르에게 맡겼다. 들끓던 내란을 잠재우고 사람들에게 숨돌릴 틈이라도 주리라는 기대에 그가 죽을 때까지 1인 집정관의 자리에 있도록 했다. 이 종신 집정관의 지위는 가장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으므로 카이사르는 이제 왕이나 다름없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었다'라고 남기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두려운 것은 사실 전제보다 혼란이었다.

따라서 로마의 자유민은 왕정시대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전제군주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었다. 기억이나 의식이 짧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현실이 너무 다급해서였을 수도 있다. 카이사르가 실제로는 황제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그에 대한 극존칭 또는 명예부여에서도 증명된다.



황제나 다름없었던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사실상의 전제군주인 '종신 독재관(Dictator Perpetua)'뿐만이 아니라, 종신 '최고제사장(Pontifex Maximus)', 종신 '최고사령관(Imperator)', '국부(Pater Patriae)', '원수(Princeps)'와 같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온갖 명예들을 다 갖는다. 또한 자신이 태어난 달을 자신의 성을 따 'July(영어로 7월, 라틴어로는 luglio)'로 명명하는 영광도 갖는다. 그리고 사후에는 원로원 결의로 '신(神)'의 자리에 오른다. 사후에는 황제를 건너뛰어 아예 신이 된 것이다.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는 그냥 국가가 아닌 제국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로마세계는 민족과 종교가 다양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언어도 많다. 이런 나라를 고대인은 제국(임페리움)이라 불렀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황제의 출발을 따지자면 그 시원은 사실 알렉산더 대왕(재위BC336-BC323)이다. 알렉산더는 고대 그리스의 국가 개념을 바꾼 인물이다. 불과 13년이라는 짧은 정복기간 동안 도시국가 폴리스를 동서로는 그리스에서 인더스강까지, 그리고 남으로는 이집트까지 확장시킨 인물이다. 이를테면 다민족·다종교·다언어로 이루어진 최초의 제국이고 당연히 최초의 황제이다.

그러나 후인들은 그런 알렉산더를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이라 부르지 알렉산더 황제라 부르지 않는다. 알렉산더는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는 도중 삶을 마침으로써 제국 체제를 갖춰 3대륙을 다스릴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고, 또 알렉산더 사후 3대륙은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누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곧바로 분할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뛰어난 왕이라기보다 차라리 뛰어난 장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서양 최초의 공식적인 황제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재위 BC27-AD14)다. 카이사르 여동생 율리아의 외손자인 옥타비아누스는 18살에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양자로 지명받았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들어 지중해 세계의 마무리 정복활동과 함께 절대 군주로서의 실질적 및 공식적인 1인 권력 체제 확보에 나선다. 36살에 국가 운영에 대한 전권을 쥔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최초 공식황제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는 그의 공식적 명칭처럼 BC27년에 절대 권력자가 된 것이다. '다민족·다종교·다언어'를 지배하는 로마의 황제 지위는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오현제 시대(96-180)를 넘어서면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르만족의 일족인 고트족 토벌에 나섰다 데키우스 황제(재위249-251)가 오히려 야만족의 유인에 빠져 전사한 이후 로마는 야만족들에게 돈을 주고 평화를 사게 되고, 새로 일어난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226-651) 공격에 나선 발레리아누스 황제(재위253-260)는 오히려 적에게 포로로 잡혀 굴욕적인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출처: 신동기 저 '오래된 책들의 생각'(2017, 아틀라스북스)



/인문경영 작가&강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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