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
광주의 거리와 광장은 언제나 살아 있는 무대였다. 5월의 금남로, 도청 앞 광장, 광주공원까지, 시민들의 외침은 예술이 되었다. 벽화와 시, 노래와 연극 속에 시민들의 진심이 담겼다. 표현하는 일은 광주 시민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책임이었다.
광주는 지금도 그렇게 살아 있다. 비엔날레, 프린지페스티벌, ACC의 실험적인 공연들, 청춘문화누리터의 거리공연, 5월의 민주주의 대축제까지. 이 모든 활동은 시민의 질문을 예술로 바꾼 결과다. 광주는 민주화의 도시이자, ‘깨어 있는 감수성’의 도시다.
광주의 문화예술은 늘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거대한 외침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조용히 묻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잘살고 있는가?”, “우리는 함께인가?”, “우리는 잊지 않고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도시는 표현하는 것을 시민의 의무로 여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을 오히려 책임의 회피로 생각했다.
그렇기에 광주의 예술은 늘 살아 있었다. 고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술은 이 도시에서 단순한 장식이나 오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민의 감정이며, 시대의 기록이고, 공동체의 양심이었다.
하지만 요즘 사회의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비판에 지쳐가고 있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 “괜히 나섰다가 손해 본다”는 냉소가 일상적인 언어가 되고 있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면, ‘예민하다’, ‘유난스럽다’는 반응이 먼저 돌아온다. 이런 시대일수록 예술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예술은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늘 타인을 향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장면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예술은 사람을 멈춰 세우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문화도시는 ‘즐기는 도시’가 아니라, ‘생각하는 도시’여야 한다. 표현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되새기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기후 위기를 악기로 표현하고, 어떤 이는 여성의 삶을 판소리로 풀어낸다. 어떤 이는 민주주의의 기억을 퍼포먼스로 되살린다. 이 모든 작업은 질문이다. 단순히 무언가를 꾸며내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를 드러내고, 말하고, 같이 보자는 행위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문화는 곧 정치이며, 예술은 곧 도시계획이다. 행정은 단지 시스템이 아니라 감수성이고, 정치는 권력이 아니라 태도다. 문화는 삶의 방식이고, 공동체를 만드는 언어다. 그렇기에 문화에 투자한다는 것은 사람을 키우고 도시를 지키는 일이다. 문화예술 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도시의 품격과 국가의 자존을 드러내는 선언이다.
그 가운데 특히 5월은 광주의 시간이다. 단지 추모를 위한 달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시간이다. 예술은 이 질문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응답해왔다. 시인들은 ‘기억의 언어’를 찾았고, 무용수는 그날의 몸짓을 복원했으며, 음악가들은 진실을 멜로디에 담았다. 예술은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잊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했다.
나는 때때로 이른 아침, 미디어아트 플랫폼 앞 벤치에 앉아 생각한다. 도시는 정말 변했는가? 사람들의 말투는 달라졌고, 건물은 새로 들어섰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치가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정말 우리 삶도 함께 바뀌었는가?
그 질문은 예술가에게만 맡길 수 없다. 행정도, 시민도, 기업도 함께 답을 고민해야 한다. 예술가 혼자 질문하고 혼자 외치는 시대는 지나야 한다. 문화 공동체는 함께 묻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기업은 메세나로 응답하고, 행정은 따뜻한 눈으로 예술을 바라보아야 하며, 정치는 문화의 문법으로 권력을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예술 생태계다.
광주는 이미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다. 깨어 있는 감수성의 도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 예술로 말하는 도시. 이런 도시야말로 진짜 문화도시다. 예쁜 조형물이나 일회성 관광 콘텐츠가 아니라, 공동체가 사유하고 토론하며 함께 성장하는 문화 생태계.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도시의 미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지금, 이 도시에 필요한 질문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떤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술은 그 물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광주는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질문은 지금,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뜨거운 5월에 예술 도시의 미래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