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이어서 더 아름다운 운주사 천불천탑
전시공연

미완이어서 더 아름다운 운주사 천불천탑

황순칠 개인전 21~27일 인사아트센터
입석불·와불·탑시리즈 등 40여점 선봬
12·3 이후 새롭게 바로 서는 나라 희망

황순칠 작 ‘龕室佛(감실불)’
황순칠 작 ‘눈보라 몰아치는 靜寂(정적)의 龕室佛(감실불)’
2013년 3월 담양 남면 독수정에서 매화를 그리던 황순칠 화백은 불현듯 정원 돌탑에서 운주사 항아리탑을 떠올렸다. 매일 매화 작업을 하는 중에도 항아리탑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그는 매화 작업을 마치자마자 운주사로 달려가 40호 종이에 목탄 작업 후 물감으로 한 달 남짓 그려 수채화 항아리탑을 완성했다.

하나만 더 그려보자는 생각에 다시 운주사를 찾았을 땐 목이 잘린 돌부처에서 광주 5·18의 상처를 떠올렸다. 황 화백은 그 돌부처를 화폭에 담아내며 위안을 받았다. 석불 석탑의 밝고 선명한 쑥색과 적회갈색, 그리고 거친 화산 응회암석이 싫지 않았기에 미완의 인간적인 돌부처와 인연을 이어갔고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운주사로 달려가 천불천탑을 그리며 겨울을 났다.

황 화백은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천불천탑을 그렸지만 그동안 한번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난 12월 3일 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작가는 운주사 천불천탑 작품을 공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운주사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전해오는 것처럼, 새롭게 바로 서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황순칠 작 ‘항아리탑’
황순칠 화백의 23번째 개인전 ‘운주사 천불천탑 와불이 일어나다’가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그동안 그려온 운주사 천불천탑 작품 중 40여점을 엄선해 선보이는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운주사 천불천탑 작품들은 모두 황 작가의 숙명적인 결과물들이다. 미완이어서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운주사의 돌부처, 운주사 경내에서 그려낸 ‘입석불’, ‘와불’, ‘좌불’, ‘감실불’, ‘탑’ 시리즈 등이다.

이번 운주사 천불천탑 그림들은 서예의 갈필법을 연상케 했던 ‘고인돌 마을’ 시리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견 연장선상에서 좀 더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마치 토수(土手)가 미장하듯 나이프 기법을 대담하게 구사해 오돌토돌한 돌의 질감을 이전의 ‘고인돌 마을’보다 한층 강조했다. 그는 운주사 돌부처와 탑을 그리고자 수백번 나이프로 붓놀림하듯 그려 완성도를 높였다.

정찬주 소설가는 작품 해설을 통해 “미완의 탑 그림을 보면 감상하는 이가 미완의 탑이 되고, 미완의 돌부처를 보면 미완의 돌부처가 되기를 바란다. 천불천탑 그림들이 인간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에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고 편안하리라 믿는다”면서 “황 화백의 운주사 천불천탑 작품감상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황 화백과 같은 ‘석불이 나다’라는 깨달음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황순칠 작 ‘항아리탑’
황순칠 화백은 “원래 서예작업과 울산 반구대 현장작업을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12·3 계엄정국을 거치면서 천불천탑을 공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면서 “이 나라에 희망을 보이고자 ‘운주사 천불천탑 와불이 일어나다’를 제목으로 삼아 뜻있는 전시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여수에서 태어난 황 화백은 고교시절 서예를 배웠고 안진경체, 구양순체, 왕희지체, 소동파체를 혼자 힘으로 독파했다. 한때 김충현 서체를 가까이했고 예서와 전서, 행초서, 초서를 많이 썼다. 허백련이 개원한 연진회 미술원에서 동양화를 배운 뒤 대학에 들어가 서양화를 익혀 그의 그림 속에는 동서양의 기법이 두루 섞여 있다. 초묵법의 획을 연상케 하는 ‘황소’시리즈, 갈필법으로 질감을 드러낸 ‘고인돌 마을’시리즈, ‘배꽃’ 시리즈를 선보여 왔으며 이번 ‘운주사 천불천탑’전은 21년만의 서울전시다.
최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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