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참여형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15~18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에서 열렸다. |
관객참여형 연극‘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15~18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에서 열렸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5·18 40주년을 기념해 2020년 만들어진 관객참여형 연극으로 올해는 ACC 10주년 기념 레퍼토리로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공연마다 달라진 공간을 선보이는 예술극장1은 관객참여형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맞아 또다른 무대로 꾸며졌다. 가운데 무대를 둘러싸고 관람석이 경계없이 둘러싸인 형태였고, 관객이 극에 참여하는 만큼 무대와 관람석의 구분이 없었다. 무대와 가까운 쪽은 뒤집어진 우유상자(극중 바리케이드로도 사용된다)에 앉을 수 있었다.
80년 5·18 열흘간의 항쟁을 보여주는 연극이지만 내내 무거운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계엄군이 얼마나 평화로운 광주를 짓밟았는지 보여주는 흥겨운 분위기가 극 초반 연출됐다. 강강술래를 하는 장면부터 관객들은 이미 극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스크린에서 열흘간의 항쟁이 시간대별로 흘렀고 광주시민이 총을 갖게 된 배경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됐다. 시민군(관객 참여)이 계엄군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독재자는 물러가라”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광주만세”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금남로 행진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함께 불렀다. “에이샤 에이샤”를 외치며 다같이 무대에 모여 어깨동무를 한 모습에선 80년 광주시민이 어떻게 하나가 됐는지 그대로 재현됐다.
관객참여형 연극이라 낯설어할 수도 있지만 전혀 걱정할 건 없었다. 시민군이 된 관객은 강강술래를 하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등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어울렸다. 계엄군과 맞서야 하는 등의 장면에서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안내에 따라 뒤로 물러나 다시 무대에 집중하면 됐다.
짐작은 했지만 이 작품은 눈물을 훔칠 무언가가 필요했다. 특히 도청에서의 마지막 항쟁을 앞두고 자신의 이름과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모습은, 보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각오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너희는 좋은 세상 살아라”는 말에서 울컥해지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극의 시작 오빠를 기다리던 여동생이 마지막에 다시 등장했다. 여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2025년 더이상 오빠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가슴 한켠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야외마당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출연자와 관람객 모두가 초를 밝히며 행진한 뒤 하나 돼 빙빙 돌았다. 배우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극장의 문이 닫히면서 80년 5월로 떠났던 짧지만 길었던 시간여행이 끝났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80년 5월을 직접 체험하며 5·18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보게 만드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했다. “나는 광주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