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후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2부/ 영원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탐하다<21>폼페이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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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후의 자동차로 유럽여행 2부/ 영원한 관광대국 이탈리아를 탐하다<21>폼페이②

전율을 일으키는 생생한 과거 도시전경
포로 로마노 광장과 켄타우로스 기마상
목욕 즐긴 로마인 대중목욕탕 형체 남아
선술집에 남아있는 화덕, 비극 깨닫게해

켄타우로스, 즉 반인반마 동상이 있는 폼페이 중심의 포로로마노 광장과 관광객들.
고대 폼페이의 서쪽엔 포르타 마리나가 있는데 이탈리아 말로 ‘해변의 문’이란 뜻이다. 즉, 고대엔 그 쪽에서 도시에 진입했다. 고대 폼페이 시내의 조감도를 박물관에서 보면 포르타 마리나 좌측에 진입도와 해변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30km에 위치하는데 엄청난 화산재는 폼페이를 완전히 뒤덮고도 해변의 휴양도시 폼페이를 현재처럼 1.2km 내륙에 위치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베수비오 화산의 커다란 분화구는 항공사진에서 선명히 확인되고 분화구를 중심으로 거대한 산줄기가 방사형을 이루고 있다.

구내 서편의 바실리카는 공공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인데 2층으로 건설된 건물의 뼈대가 보존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바실리카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바실리카는 성당을 뜻하기도 하는데 바실리카라는 건축구조는 중세이후에 성당의 건축양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2층 골조를 이루는 석조기둥이 아직도 앙상하게 서너 개 남아 있어 멀리서 보면 푸른 하늘의 스카이라인이 된다.

이 곳의 왜곡된 잔해를 보면 화산 폭발시 대지진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베수비오 화산의 분화구를 제외하고도 능선을 이루는 정상부가 현재 눈에 띌 정도로 함몰되었으니 그 당시 토사를 하늘로 날려 보낸 화산 폭발의 압력은 가히 가공할만 했을 것이다.

폼페이 유적과 뒷쪽의 베수비오 화산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도시의 중앙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포로 로마노 광장, 즉 폼페이 광장이 있다. 광장의 저편 끝으로는 이 도시를 삼킨 화산의 산마루가 눈에 띈다. 로마의 계획도시에는 꼭 포로 로마노가 있었다. 현재의 로마시내에도 관광의 중심지가 되는 포로 로마노가 있어 각종 고대 유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하여간 포로 로마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 형성된 광장이니까 시장, 신전, 목욕탕, 투표장 등등 각종 사회적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곳이다. 즉, 인간사회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이 곳 광장의 넓은 공간은 시야를 가리는 건물이 없어 베수비오 화산이 가장 잘 보이는 명소이다. 핏줄처럼 얽힌 골목길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으나 광장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그룹별로 떼를 지어 있으니 지금도 광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광장의 중심엔 반인반마(半人半馬) 기마상이 있어 휑한 공간을 잘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엔 아폴로 신전까지 있으니 포토존으로서 딱 그만이다. 반인반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켄타우로스인데 그런 종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양문화권에도 반인반수가 있어 요물, 또는 요괴로 전해지며 문학작품에도 등장한다.

넓은 폼페이 광장은 모래바닥으로서 화산재에 섞여 있었던 잔 자갈도 있는데 원래는 하얀색 대리석으로 온통 포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리의 카세르타 궁전을 짓는 데 이곳의 백색 대리석을 걷어가 재활용했다고 한다. 하얀 대리석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탈리아에선 그런 규모의 대리석 활용이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폼페이에도 대중목욕탕의 형체가 온전히 남아 있다. 청결과 담소를 중요시했던 로마인들은 목욕을 아주 즐겼는데 자유시민은 하루 일과를 오후 2시쯤 끝내면 목욕탕에서 하루를 마감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자주하고 도시에 배수시설도 잘 갖췄으니 큰 전염병이 창궐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목욕탕은 체력단련장과 휴게소였으며 여인들의 수다 장소이기도 했으니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심신이 건강하지 않았겠는가! 여자용 여탕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로마시대에 출산장려는 국가정책이었으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노예들은 자식들을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 이성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포로로마노 광장의 화산재 흙바닥. 원래는 백색대리석으로 포장되었는데 타용도로 모두 훔쳐가고 말았다.
2,000년 전 고대를 그대로 재현한 폼페이 유허에는 선술집이 여럿 있다. 그래서 고대 로마인들의 술자리문화를 소상히 알 수 있다. 선술집에선 음식도 판 것이 화덕으로 남아 있다. 남아있는 화덕은 비극의 순간을 헤아리게 하고 비극의 시간이 정지된 것을 깨닫게 해준다. 화덕을 좋아한 고대 폼페이 사람들은 빵을 구어 먹었는데 그게 피자의 원산지가 되었다. 즉, 나폴리의 피자는 이미 고대 로마의 음식문화에서 유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어느 곳에서나 음식점 간판에서 쉬 볼 수 있는 pizzeria는 피자 전문식당을 말하고 pizza는 철자 그대로 영어가 되고 한국말이 되어 세계적인 음식으로서 사랑받고 있다.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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