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란사소 국립공원의 험준한 설산. |
이렇게 알프스 산맥의 남쪽 사면엔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이탈리아 중부에 다시 2,912미터나 되는 고봉이 있다니 쉬 믿어지지 않았다. 중부지역의 그란사소 국립공원은 아펜니노 산맥에서 가장 험악한 곳인데 아브루초 주에 위치한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이면 접근할 수 있는 비교적 가까운 곳이다.
그란사소(Gran Sasso)는 이탈리아어로 ‘큰 돌’을 의미하는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2월초 흐린 날 늦은 오후에 공원내의 호텔에 도착하여 서둘러 입실했으니 주변 산세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쾌청한 아침 햇살을 받은 눈부신 고봉이 중천을 찌를 것 배경을 이루고 있으니 깜짝 놀랐다.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역사적 유적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자연자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료를 사전에 면밀히 조사하지 못하였다.
공원 설봉 북쪽 사면의 ‘오르나노 그란데’란 촌락의 Locanda Del Parco라는 호텔엔 갈색 구렛나룻이 인상적인 멋쟁이 이탈리아 청년이 호텔리어로서 우리를 시종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한국어 인삿말에도 관심이 있어 몇 개 가르쳐 주니 즉시 따라했다. 발음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숨막히는 비경을 간직한 국립공원에 순수하고 친절한 시골청년이 함께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드높은 알프스 관광에다 사위에 널린 역사유적관광 위주의 이탈리아 관광에만 푹 빠진 한국 여행객들에게 내가 한국에 가서 적극 소개하겠노라고 호감을 보였다. 그는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 그란사소 국립공원내 호텔의 멋쟁이 호텔리어. |
하여간 독일처녀 물리학자는 평생 이곳 지하에서 햇빛을 보기도 어려운 연구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순박한 동네 총각을 만난 것이 그들의 행복이리라... 불현 듯 서정주 시인의 ‘몽블랑의 신화’라는 시구가 그들 부부의 스토리와 중첩되기도 했다.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하지 않은가. 순박한 산골 청년이 현지 남편이 되어 늘 즐겁고 반기는 표정으로 매일 맞아주면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그녀는 연구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아내도 복잡한 물리법칙은 알지 못하지만 남편은 잘 안다고 재치있게 대답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호텔리어가 자세히 설명해준 대로 A24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남행하면서 차창 밖으로 설산 준봉의 위용을 실감하였다. 이 산맥은 동서로 뻗어 있는데 빙하까지 있다. 로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렇게 빼어난 심산유곡이 있다니 그저 이탈리아의 자연관광자원이 부러웠다. 추천받은 칼라시오 콤뮤네는 평범한 산골 마을로서 별 특징이 없었지만 이탈리아 산촌의 한 모습이라 여겼다. 깊은 산골이라도 선진국이라 도농간 빈부격차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잘 정비된 산골마을은 일부 낡은 가옥은 있어도 폐가는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평화롭게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후 나폴리까지 가는 길에는 별다른 관광지가 없었다. 소라(Sora)라는 로마가 속한 라치오 주의 동쪽에 위치한 소도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행자의 즐거움은 음식에도 있으니 커다란 스테이크를 뜯었다. 값싸면서도 맛이 있으니 이런 여유와 즐거움을 어디에 비기랴. 마을 가운데로는 깨끗한 강물이 흘러 건강한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 주변의 산상에는 눈이 덮여 있어도 겨울 날씨는 온화하고 강변 풍경마저 이국적이니 만고강산을 유람하는 흥이 절로 돋았다. 그래, 이름도 알 수 없는 강변이지만 시골 소도시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즐기고 사방 풍광에 취했으니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이제 그 유명한 나폴리를 향해 가고 있잖은가!
/동신대 호텔관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