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오페라축제가 열리는 아레나, 베로나. |
![]() 줄리엣 하우스 벽면의 러브레터와 사랑의 열쇠. |
일반인들에겐 이탈리아 하면 로마와 바티칸, 베네치아, 나폴리와 폼페이 정도가 일반상식이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 베로나(Verona)를 거명하면 슬픈 사랑의 여주인공인 줄리엣을 가장 먼저 기억할 것이다. 우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련의 흔적을 찾아 이 도시를 찾았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몰고 진입했으니 광장인 있는 아레나에 먼저 도착했다.
베로나는 베네치아와 동일한 자치주에 속하므로 빠른 기차를 타면 1시간 10분이 소요되는 모양이다. 당연히 완행기차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요금을 절약하는 동시에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주가 다른 밀라노와 볼로냐에서 기차를 타고 비슷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롬바르디아 평원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로마의 테베레 강, 피렌체의 아르노 강처럼 베로나의 중심은 S형태를 이루며 남으로 아디제 강이 흘러간다. 평원지대라 전체가 심한 곡강을 이루는데 시내권에서만도 두 번이나 굽어 흘러간다. 북쪽 알프스 준령을 시원지로 한 빙수가 시원하게 흘러가니 줄리엣의 사랑도 맑은 강물처럼 청순하고 평원의 이슬처럼 투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피렌체에 이어 다음날 베로나 관광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아레나에서 시작되었다. 아레나는 영어로도 arena로 표현되는데 원형경기장을 말한다. 특히 고대의 원형극장이나 경기장을 말한다. 이 곳 아레나는 무려 2,000년 전에 건축되어 지금까지 보존이 잘 된 경기장이다. 점점이 핑크빛 대리석 외관이 특이했다.
아레나는 고대의 원형경기장으로서 이탈리아에서 3번째 규모라고 하며 거의 3만명을 수용한단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원형극장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셰익스피어 연극제와 여름날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가 이곳에서 성대하게 거행된다. 그래서 여름밤은 별이 빛나는 여름밤으로서 평생 그 감흥과 여운을 잊을 수 없다고 하니 여름날에 다시 찾아와 볼 일이다.
오페라 축제는 베르디 탄생 100주년인 1913년에 시작되어 베로나를 대표하는 문화이벤트가 되었다. 세계 유수의 성악가들이 참여하는 공연은 어둠이 내려앉은 9시에 시작되는데 공연 직전에 모든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촛불점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컬트 같은 의식은 지휘자와 공연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전통의식이라고 하니 예술의 도시는 이렇게 다른가 보다. 매년 공연내용이 달라지지만 아이다, 라트라비아타,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주요작품으로서 약방의 감초 격인 모양이다. 특등석은 우리 돈으로 20만원을 훌쩍 넘지만 꼭 볼 가치가 있다고 하니 여름날 시원한 베로나의 밤하늘을 맘껏 향유하려면 꿈을 꾸어도 좋을 듯싶다. 하여간 그 곳에 갈 기회가 내게도 온다면 오래전 파리의 무랑루즈 공연을 가까이 보기 위해 구입해 둔 쌍안경을 꼭 가져가야지….
이곳이 고향인 줄리엣의 무덤도 시내 남쪽 아디제 강변에 있지만 줄리엣의 집만 찾았다. 비가 오는데도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2010년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Letters to Juliet)’의 배경이 되어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그들이 남긴 하트 메모지는 벽에 가득하고 손이 닿지 않은 높이까지 어지럽게 낙서한 그래피티는 외려 어수선해 보일 지경이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속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데 정치적으로 원수지간의 자녀로서 피해야 할 비련에 빠지고 마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내용이라 이곳을 찾는 각국 연인들이 넘쳐난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목숨까지 걸 만큼 절절하였으니 젊은 여행자들은 그런 사랑을 동경할 만도 하다. 젊은 여행객이 아니라도 중장년들도 불타는 사랑을 꿈꿀 수 없을까 보냐.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는 것도 열렬한 사랑의 여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간절한 연정을 담은 연서는 온통 입구부터 벽에 가득 붙어 있다.
정원의 줄리엣 청동상은 가슴이 반질반질했다. 모든 방문객들이 염치없이 만지고 가기 때문이다. 나라고 못 만질소냐.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애들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당연한 꿈이리라.
정말 주목할 만한 점은 줄리엣이 서성이던 발코니도 마련되어 있지만 정작 이 집은 줄리엣의 집이 아니다. 1905년 시청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해 놓았지만 그런 걸 아랑곳 하지 않은 모든 여행객들은 지극한 사랑을 꿈꾸며 이곳을 찾는다. 사랑의 열정은 물불을 가리지 않듯 소설이거나 가공의 장소이건 따지지 않는가 보다.
이 도시에도 로마시대 ‘포로 로마노’였던 에르베 광장의 마돈나 여인상이 있고, 람베르디 첨탑이 있는 시뇨리광장, 장터가 있는 브라광장 등이 있다. 두오모 성당과 산타 아나스타시아 성당도 있다. 또 성채중에서 강변의 산피에트로성은 너른 조망을 볼 수 있으니 영산강변의 풍영정과 호가정이 멀리 월출산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치이다.
곡류천인 아디제강엔 아름다운 다리도 두 배나 많은데 강변의 테라스에서 유유히 식사를 하는 호사는 분위기를 즐기는 자의 몫이리라.
/동신대 교수·호텔관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