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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자동차가 생긴 것은 대학생이던 90년대 초였는데 아버지가 자동차 카달로그를 들고 와 차를 산다고 발표했을 때 나에게 던져진 충격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집도 차를 산다고? 부자집이나 있는 줄 알았던 자동차를?' 진짜로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차가 있기 전 여름 바캉스라도 가려고 하면 이것은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다. 예를 들어 중학교 때 가족들과 지리산 피아골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내 차를 운전하고 1~2시간 달려 가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우선 무거운 배낭과 텐트를 각각 짊어지고 광주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구례읍까지 가야한다. 그곳에서 군내버스로 갈아탄다. 지리산 근처에 도착하면 피아골까지 가는 승합차를 타고 가야 겨우 계곡에 도착 할수 있다.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30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버스를 이용해 여행을 가는 시대여서 불편한지를 몰랐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일까.
차가 없어도 여행가는 방법은 진보되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때 지리산을 갔을 때는 여러 가족이 돈을 모아 승합차를 대여했다. 버스를 갈아 타지 않고 바로 가니 그렇게 편하고 좋았다.
승합차 기사님이 틀어준 스티비 원더, 라이오넬 리치 등 유명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도 참 좋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고요한 밤에 2차선 국도 위로 떠오른 보름달을 차창 너머로 여유롭게 보면서 나의 미래를 그려보던 그때가 참 그립기도 하다.
집에서 먼 학교에 배정받으면 3~4집이 돈을 모아 등교 트럭을 섭외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버스 노선도 잘 되어있고 환승도 잘 되지만 당시에는 집에서 버스가 안 가는 곳도 허다했고 환승 개념 자체도 없었다.
차 없이 다니던 시절의 에피소드야 끝이 없다. 현재 광주에서 고흥까지 승용차로 1시간 30분만에 걸리는 시간을 당시에는 6시간이 걸렸다.
버스 타고 가다 고갯길에서 차가 멈춰서면 승객들이 모두 내려 버스를 밀었다는 부모님 젊은시절 이야기까지 들으면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체감이 된다.
서설이 길었지만 우리집도 첫 차를 샀다. 지금 생각하면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소형차였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한 가족이었다.
라디오를 켜면 자동으로 쑤욱 올라오는 라디오 안테나, CD플레이어도 아닌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잡아당기면 6단으로 끼긱소리가 나던 핸드 브레이크, '쇳대'라고 불리던 자동차 열쇠, 손으로 돌리는 수동 윈도우 등 지금에는 보기 힘든 기능들을 고루 갖추고 있던 그 차를 타고 아버지와 나는 남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자동차 시대이다. 2019년 기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2,367만 7,366대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2.19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은 한 가구 자동차 2~3대 보유가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이다.
기술발전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제 내연기관 중심차에서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전기차 같은 친환경자동차로 진화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된 반자율주행은 물론 완전 자율주행차까지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심지어 앞으로 5년 뒤에는 육상중심 교통에서 탈피해 도심항공교통(UAM)이 생활화 돼 하늘을 나르는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고 하니 90년대의 내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현 시대로 온다면 입이 쩍 벌어질 일이다.
자동차가 삶의 일부가 된지 오래인 지금 옛날 자동차 이야기를 꺼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도 또 새로운 '자동차 라떼'가 되리라. 장차 하늘에서 무등산 정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운전하면서 '라떼'는 땅에서 운전하고 다녔다고 말하는 그날을 다시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