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윤 첫 소설집 ‘남은 건 명랑한 최선’
문학출판

강나윤 첫 소설집 ‘남은 건 명랑한 최선’

8개 단편 이방인들의 고군분투 조망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내게 조금 더 호의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도 저들처럼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천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욕망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욕망했을 것이다. 일만 시간의 시간의 법칙을 가볍게 뭉개 버린 것에 대한 욕망. 그것은 사유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의 문제였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남은 건 명랑한 최선’-우체국 여자 중에서)

강나윤 소설가가 8편의 이야기를 묶은 첫 소설집 ‘남은 건 명랑한 최선’(걷는 사람)을 출간했다. 여덟 편의 단편을 통해 시대를 살아가는 이방인들의 고군분투를 명랑하게 조망하고 삶의 틈마다 배어든 불안과 소외, 현실에 대한 예민한 인식을 경쾌한 문체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표제작 ‘남은 건 명랑한 최선’의 화자는 불안에 사로잡힌 대학생이다. 코딩 수업을 들으며 무작정 자격증을 준비하지만, 어느 날 불현듯 마주한 컴퓨터 학원 광고에 이끌려 인생의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간단히 리셋’된 삶. 그러나 그것은 실패를 딛고 다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기묘한 장치로 작용한다.

첫 문을 여는 ‘방금 있었던 일’의 ‘보람’은 스스로를 아스퍼거 증후군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현실 앞에 정체성을 버리고 타협한다. ‘카피라이터, 김 과장’은 자본주의에 깊이 물든 직장인의 모습 속에서 진정성의 실체를 묻는다.

등단 작가이자 우체국 직원인 주인공이 남의 원고를 몰래 읽고, 그것을 여러 신문사에 응모하는 기행을 벌이는 ‘우체국 여자’, 갑자기 사라진 젖꼭지를 찾아 신도림역을 헤매는 ‘네 찌찌를 찾고 싶다면 신도림역 4번 출구로 와라’ 같은 작품은 현실의 경계를 기이하게 비틀며 독자에게 묘한 웃음과 불안을 동시에 안긴다.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던 주인공이 끝내 세상의 위선과 마주하게 되는 ‘오늘의 해시태그’, 하루를 복사하듯 살아가는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과 화해를 결심하는 ‘하루’에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정체성과 밥벌이 사이의 딜레마를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그려낸다.

작가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현실을 포착하고, 삶의 이면에 잠재된 부조리와 허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끝끝내 인물들은 무너지지 않고, 명랑하게 돌파할 궁리를 한다. 평온한 삶 속에서 느꼈던 불안하고 막막한 마음이 담겼다.

강 작가는 2020년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우체국 여자’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방금 있었던 일’로 제15회 노근리 평화상을 받았다.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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