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매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당신의 삶이 시였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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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매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당신의 삶이 시였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시 당선 현이령(본명 현애순)

시 부문 당선자 현이령(현애순)
어둡고 좁은 내 방에서 오랜 시간 시와 동거해 왔습니다. 사이가 좋다가도 등을 돌리기도 하고 때로는 기나긴 외사랑에 울기도 했습니다. 다가가면 멀어지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는 자주 가슴앓이를 했고 자주 절망했습니다. 그러기를 십여 년이 지나 새로운 빛 한 줌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어둠에 익숙한 저에게 무작정 뚫고 들어온 이 빛이 두렵고 설레고 막막합니다. 힘든 일이겠지만 천천히 조금씩 눈을 떠 보겠습니다. 더 깊은 바닥을 보고 그 차가운 바닥 아래에 있는 뜨겁고 융숭한 것들에게 기꺼이 가슴을 여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예민한 더듬이와 에움길을 마다하지 않는 올곧음으로 비밀의 집을 지어 나가겠습니다. 나의 몸 안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들, 이제는 기쁘게 아프겠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이 지구에서 절망과 희망의 어디쯤을 시로 더듬으며 가겠습니다.

졸시를 선택해 주시고 손잡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전남매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동안 곁에서 시의 나라로 안내해주신 이용헌 시인님, 저도 이 아득한 나라의 돋을볕이 될 수 있을까요? 가장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3년 동안 문학이란 애물을 품고 도반으로 걸어온 시옷문학회 동인들께도 애틋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일 먼저 기뻐해 주셨을 하늘에 계신 아빠, 당신의 삶이 시였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아프도록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도 고마운 맘을 전합니다. 느리지만 끝내 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말이 내 것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믿습니다.

새해부터 아주 조금 울겠습니다. 시와 나의 동거는 계속됩니다.



◇약력

1980년 충북 보은 출생. 서일대 영어과 졸업.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옷문학회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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