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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매일=광주 ] 이보람 기자 = “세상 물정을 모르던 때였는데 작품을 같이 하다 보니 동질의식이 생기더라고요. 17살의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결혼해서 잘 살았죠.”
문학을 전공해 시나리오를 쓰던 한 여성은 우연히 보게 된 소극장 공연을 계기로 극단에 입단하게 되고, 그곳에서 품바와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극단 가가의회 박황빈 대표(57)의 이야기다.
품바는 1981년 고 김시라 선생에 의해 무안에서 초연됐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기에 살다 간 각설이 대장 천장근의 이야기를 통해 민초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을 풍자와 해학으로 담아낸다. 1982년 서울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뉴욕과 미주 순회공연 등 1,800회가 넘는 무대에 올랐다.
박 대표는 1985년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극단 가가의회에서 활동하며 품바 오리지널, 각시품바, 품바-날개없는 천사 등 다양한 버전의 품바 공연을 펼쳐오고 있다. 1987년에는 당시 극단 가가의회 대표이자 품바 원작자인 고 김시라 선생과 화촉을 올렸다.
그는 김시라 선생에 대해 “인생과 작품을 알려준 그는 내 스승과도 같다”고 회상했다.
지난 10일에는 목포 삼학도 일원에서 개최된 제1회 섬의 날 기념 ‘대한민국 썸 페스티벌’에서 ‘품바-부활의 노래’ 대본과 연출을 맡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기존의 품바와 여러가지 차별화를 뒀다.
“공연 한 달 전 최종 출연이 결정 났어요. 시간도 촉박하고, 한 시간 동안 리허설을 마쳐야 해서 제대로 맞춰보지도 못하고 무대에 오르게 됐죠. 약간의 실수가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이번 무대에서 최초로 품바에 오케스트라를 접목시켜 오페레타적인 연극 품바의 음악적 특성을 극대화했다. 국악 밴드와 사물놀이, 60여 명의 목포시립교향악단이 한 무대에 올라 동서양의 조화를 이뤄낸 셈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시도는 품바의 음악적인 레퍼토리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박 대표와 목포시향 최영철 고문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목포시향의 지휘자로 활동한 경험과 서울에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는 최 고문은 좋은 문화를 알리는 데 뜻을 함께하고자 했으나 스케줄 상의 문제로 불참하게 됐다.
박 대표는 “출연 결정이 늦어지면서 최영철 감독님이 예정돼 있던 체코에 가게 됐다”며 “작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작곡가를 만나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고 전했다.
이어 “엇박자가 강해 비트감이 있는 품바와 경건한 정 박자의 클래식 음악은 각 리듬과 현악기, 관악기로 나누어 멋진 조화를 이뤘다”고 덧붙이며 “제2의 고향인 목포에서 공연을 했기에 굉장한 보람과 기쁨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 박황빈 대표 |
이번 ‘품바-부활의 노래’는 해방에서 21세기까지를 폭넓게 다루며 환생한 고 김시라 선생이 품바 후예들과 그 정신을 만나는 이야기를 심플하게 담아낸다. 드라마적인 부분은 간소화시키고 서양 음악과의 충돌을 줄이기 위해 음악적 부분에 신경을 썼다.
“품바의 특성인 풍자를 살리기 위해 품바 가문의 후예인 한 가족이 유랑생활을 하면서 ‘홍익’이라는 민족정신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가족은 심청이 가족을 패러디했고요. 신안으로 유랑을 가고 서울에서는 촛불 혁명을 접하는 내용 등을 대부분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박 대표는 품바의 매력에 대해 “시대를 초월해 우리나라 상황연극의 효시이며 하나의 독특한 장르가 돼 전 국민의 놀이문화로 장착했다”며 “22세기와 23세기가 와도 오늘을 얘기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색”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품바는 음악 속 가사를 통해 풍자와 해학을 녹여낸다. 우리 삶의 이야기를 관객들과 즉흥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게 품바의 매력이다”고 전했다.
그는 품바 세계 일주 공연이 목표라고 했다. 국악적 요소에 한국적 정서와 철학 등이 깃든 정통 우리의 것인 품바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런 공연은 전 세계에 품바뿐이거든요. 교포들에게는 향수를, 외국인들에게는 놀이성과 소통을 중심으로 관객과 경계 없이 놀고 싶어요. 상징적인 기법 때문에 깊은 의미는 잘 모르지만, 품바의 흥과 신명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