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림산방 외경. |
고층 아파트 바로 옆, 초등학교를 지나 언덕을 올라 다시 한 번 또다른 언덕을 지나오면 풀 숲에 숨어있는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우리를 반겨준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든 생각은 “시골에 온 것 같다”였다. 풀 냄새와 흙 냄새, 새가 지저귀는 소리, 큰 나무 등 회색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도심 속 숲과 같은 이 곳은 ‘덕림산방’으로, 절이었던 건물이 전통 찻집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덕림산방’의 오여남 대표(59) 부부는 다니던 절의 스님으로부터 지금의 찻집을 소개 받았다.
“그때는 이 곳이 ‘보은사’라는 절이었어요. 그런데 ‘보은사’ 스님께서 복지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절 터의 뒷 편에 노인복지관을 하나 건립하고 싶어하셨는데, 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외곽으로 가셨거든요. 그래서 저희 부부가 10년 전에 ‘보은사’를 사서 가지고 있었죠.”
지난 10년 동안은 기계 공학을 전공한 남편의 사무실로 사용되다가, 평소 음식과 전통 차에 관심이 많았던 오 대표가 지난해 7월 9일 ‘덕림산방’을 오픈하게 됐다. ‘단청’은 볼 수 없었지만 단열에 강한 목재건물과 차곡차곡 쌓여진 단정한 기와가 절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보은사’가 세워지기 전 이곳은 덕림산 정상이었다. 덕림지구로 분류되며, 바로 아래에는 덕림사라는 또 다른 절이 있다. 5·18 이후 광주 MBC가 이전해 오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변이 개발될 동안에도 이곳은 시간이 멈춘듯 예전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이름도 ‘덕림산방’이다.
‘덕림산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이곳에서 내려다 본 광주의 모습이다. 새로 집을 짓는 현장, 빽빽이 들어선 집, 언덕을 올라가는 차 등 과거 시가지에서 가깝고 전망도 아름다웠던 덕림산이 시민들의 화전 놀이터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또, 하늘과도 가까워 속이 뻥 뚫리는 기분도 안겨준다. 낮보다는 야경이 아름답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건물 뒷 편에는 덕림쉼터가 있다. 큰 나무들 틈 사이 흙 밭 위에 6개의 좌석과 테이블이 놓여 있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과 맑은 공기는 물론, 조용하게 쉬다 갈 수 있어 주변 마을 사람들도 자주 방문하고는 한다고 한다.
내부 역시 높은 천장과 나무로 된 부자재 등 절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큰 창을 통해 광주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좌석은 손님들 사이에서는 ‘인생 포토존’으로도 불린다. 전통 찻집 답게 오 대표가 직접 담근 차와 커피, 스무디, 에이드 등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메뉴가 가득했다. 그 중,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대추차와 쌍화차다.
![]() 높은 천장과 나무 부자재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덕림산방’ 내부. |
오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건강을 많이 챙기는지 커피보다는 전통 차를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직접 마셔본 대추차는 그 맛이 진하며, 대추의 달달함과 잣의 고소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마시고 난 뒤의 텁텁함도 느껴지지 않아 담백하게 마실 수 있다.
처음엔 이렇게 맛있는 전통 차를 판매하는 찻집이었으나, 평소 음식솜씨가 훌륭했던 오 대표는 지인들의 권유로 음식에까지 범위를 넓혀야만 했다. 차와 함께 간단히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제첩국수와 열무국수를 개시했는데 지인들의 부탁으로 한두번 음식을 하다보니 지금은 예약을 통해 백숙과 닭볶음탕을 판매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찾은 이날 역시 예약과 국수를 먹기 위해 찾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이들도 인터넷을 통해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젊은 층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는 섬세한 인테리어에 있다. 오 대표 부부가 직접 칠하고 만든 테이블과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인싸템(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즐겨하는 아이템)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문 후기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물고기 슬리퍼는 오 대표의 둘째 아들이 베트남에 방문했다가 인기있다며 사온 아이템이라고 한다. 그는 “인테리어를 잘 하지 못한다. 하다 보니 재미가 생겼을 뿐이다”며 “남편은 본업이 따로 있지만 ‘덕림산방’을 위해 많이 힘써줘 고맙다”고 전했다.
가깝게 살면서도 올라가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 언덕의 끝에 자리한 도심 속 숲 ‘덕림산방’. 맛있는 차와 맑은 공기, 인생 사진과 야경을 감상하며 광주의 근현대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