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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저금통·사람 모습·사과 등 소재 작품 형상화
표리부동한 삶의 모습·잃어가는 가치 성찰 노력
20일까지 순천만 도솔갤러리 ‘사과, 맛을 보다!’전
“11월 개인전, 거울로 보일 수 있는 것 다 보이겠다”
돼지저금통을 보면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2007년 황금돼지해 우제길미술관에서 ‘기념비적 유물’전이란 이름의 전시로 빨간 돼지저금통이 아닌 깨진 거울조각을 붙여 만든 ‘희망돼지’를 선보인 이정기 작가다.
작가는 이후 ‘돼지, 꿈을 꾸다!’, ‘반추적 시선’ 등의 전시를 통해 현대인의 무분별한 소비성을 고발하는 한편 여전한 희망의 상징으로서 돼지저금통의 가치를 선보였다. 거울 조각을 입은 돼지저금통은 미술관 조명을 받으며, 때론 야외에서 자연의 빛을 받으며 눈부시게 빛나기도 오묘한 빛을 발하기도 했다.
돼지저금통이 상징처럼 떠오르는 작가지만 그동안 작가는 가로수, 나막신, 쇼핑백, 사람의 형상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올해 사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순천만 도솔갤러리에서 ‘사과, 맛을 보다!’라는 주제로 ‘표리부동’한 사과의 모습을 전시 중이다. 작가의 7번째 개인전이다.
빨갛고 매끈하고 탐스런 외양의 사과와 4분의 1조각, 또는 베어문 속살에 붙여진 깨진 거울조각은 어찌 보면 섬뜻하기도 하지만 표리부동이 무언지 떠올리게 한다.
최근 북구 중흥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시장에서 맛있고 탐스런 빛깔의 사과를 고르고 골라 집에 왔는데 깎아 한 입 베어 물었을때 상상했던 사과 맛이 아니었던 상황이 소재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골랐는데도 먹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사과 맛이 마치 인간관계와도 같아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받거나 낭패를 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터여서 작가의 거울을 소재로 한 ‘낯설게 받아들이기’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이었다.
“깨진 거울을 통해 퍼즐처럼 쪼개진 자기 얼굴을 맞추는 그런 상황들을 유도하고 싶어요. 작품의 아이디어는 주로 생활 속에서 나옵니다. 지금까지 작업했던 사람, 돼지 등도 그때그때 상황에서 소재를 찾았죠. 졸업후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돼지저금통을 갈랐던 시절이 있었어요. 근데 집 근처에서 갈라진 채 나뒹구는 돼지저금통을 보았죠. 정말 각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2000년 첫 전시에서 ‘잃어버린 원초성’을 주제로 평면작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군대를 다녀온 후 작가는 본격적으로 조각낸 거울을 붙여 작업하는 설치, 입체작업으로 전향한다. 늘 새로운 것과 정체성에 대한 욕망을 가졌던 작가가 거울이라는 소재를 접한 것도 일상 속 어느 날이었다.
“바쁘게 쫓기듯 일상을 살다 집의 거울이 깨진 것도 모르고 지냈던 거죠. 어느날 거울을 보다 비로소 거울이 깨져있었다는 걸 발견했어요.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 뭔가 깨닫는 바가 생기더군요. 그렇게 거울을 소재로 삼게 됐고 깨진 거울 속의 자신처럼 ‘낯설게 받아들이기’를 통해 스스로를 반추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6년여를 준비한 끝에 그는 2007년 우제길미술관에서 두번째 전시 ‘기념비적 유물’전을 열었다. 돼지저금통과 나막신, 거울, 의자, 은행나무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고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2009년 ‘돼지, 꿈을 꾸다!’와 2013~2014년의 ‘반추적 시선’ 시리즈를 선보이며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에 친근함을 표했고 '거울'이라는 소재와 함께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지난해 지역 원로들이 가장 노력한 청년작가에게 주는 제21회 광주미술상을 수상한 영예를 안기도 했던 작가는 새로운 작품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사과, 맛을 보다!’전에 이어 11월 우제길미술관에서 열 예정인 개인전에서 ‘수면’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할 계획으로 작품제작에 한창이다.
광주미술상 수상 소감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했던 작가는 수면 위로 떠오른 희생자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가족잃은 이들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작품으로 보이려고 합니다. 위로한다고 해서 위로가 되진 않겠죠. 가족들이 스스로 치유해 나가야 잊혀지는 것이니까요.”
작가 스스로도 가족을 잃은 큰 슬픔이 있어 세월호의 아픔은 그에게 꼭 치유해야 하는 과제같은 것이었을까.
“거울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줄 생각이에요. 11월 전시는 입체 뿐만 아니라 평면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평면에 한계를 느껴 입체를 시작했다면 이제는 평면으로도 내가 고민하는 것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큰 고민은 실험적 재료들에 대한 거죠.”
그는 이제 거울이라는 소재를 한번 털어내고도 싶다고 했다. 영상과 사진 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는 바램을 전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은 미래 유물로 남는다는 생각입니다. 전 그냥 화가보다는 미술가가 되고 싶어요. 미술 전반에 대한 걸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죠. 메시지 전달에 더 좋은게 있다면 찾아나설 겁니다. 관람객과 소통하고 말하는 것이 예술이고 사회적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