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유년의 판타지 ‘삶의 휴식’ 선사
예술의별

다시 만난 유년의 판타지 ‘삶의 휴식’ 선사




■ 채경남 작가

“애니·판타지·에코·힐링이 내 작품의 주제
어른동화같은 작품…치유와 편안함 느꼈으면”



작가의 작품이 눈에 확 들어온 건 전시도록을 넘기다였다. 광주롯데갤러리에서 지난 6일부터 신년기획으로 열고있는 ‘생활예찬’전.
아홉 작가의 작품이 담긴 도록을 넘기다 채경남 작가의 ‘오후의 산책’에 눈길이 하염없이 머물렀다.
반바지에 런닝셔츠를 입은 한 소년이 자연 속에 편히 앉아 쉬고 있다. 소년의 옆엔 소년의 앉은키 만큼이나 커다란 애완견이 소년과 살을 맞대고 돌아앉아있다.
애완견의 꼬리는 소년의 종아리를 감고 있다. 반짝이는 가루를 뿌린 듯 전체적 분위기는 판타지….
무엇보다도 둘 사이의 교감이 오롯이 느껴지며 잠시 행복에 잠겼다. 다음 장에 실린 작품은 ‘토란대의 행방불명’.
토란대를 우산처럼 머리 위에 든 맨발의 소년이 숲 속에 서있다. 제목에서 불현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연상됐다.
작품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2011년 어느 휴일, 섬집 아이마냥 혼자 놀아야 하는 오후였다. 토란대를 든 한 소년이 내게 왔다. 소년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딸깍! 마치 마르셀 프로스트의 마들렌 쿠키처럼 토란대의 소년은 나를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순간이동 시켰다.
다시 만난 유년의 판타지는 난파 위기에 처한 작업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고단한 나의 삶을 쉬게 해주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작가의 의도와 기자의 감상 포인트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지친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해 준 작가를 만났다.





“‘토란대의 행방불명’은 제 작업의 영감이 되어준 작품입니다. 부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인데 어릴 때의 꿈을 잊어버리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죠.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애니, 판타지, 에코, 힐링. 네가지가 제 작품의 주제입니다.”
북구 오치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채경남 작가(45)는 작품속 아이들같은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자택인 두암동과 오치동 화실을 오가며 작업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작업실에 걸린 작품에 온통 어린이와 동물들, 자연이 어우러져 있다. 판타지 동화 속 같은 느낌이다. 특이한 건 작품 모두가 평면이 아니라는 점. 한지로 꼬인 머리카락이나 종이죽으로 만든 얼굴, 동물의 귀, 악기 등 부조가 작가 작품의 특징이었다.
작가는 조선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그림 그리기만 좋아했던 그를 위해 언니가 “좋아하는 그림을 맘껏 그려보라”며 알바로 미술학원비를 지원해줬던 터라 비싼 물감 비용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조소를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미대에 진학할 때는 복수전공으로 회화를 할 계획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미대 졸업후 제5회 미술세계 대상전에 테라코타 작품으로 입상도 했지만 재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방황이 시작됐다. 서울에서 잠깐동안 애니메이션 회사에 몸 담기도 했다.
“작가로서 자리잡기 힘들었습니다. 자유롭게 하고싶었던 걸 하고 싶고 내면을 마음대로 표출해보고 싶은데 갈 길을 못잡았던 거죠. 그림은 막히고 생활은 힘들어져 고민하다 접어버릴 생각을 했었는데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안되겠더라구요.”
그는 조각의 매스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내면과 꿈, 상상의 세계를 아크릴의 화려한 빛깔로, 색채로 포착되지 않는 명쾌함은 부조적 특징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현해 내고 있다.
2006년 각화문화의집에서 연 첫번째 개인전 ‘자아의 신화’에서는 조소에 회화를 가미한 작품들을 선보였었다. ‘새벽’, ‘전설’, ‘夢’, ‘상처’, ‘절대적 시련’ 등 당시 작품들엔 늦은 첫 전시를 연 작가의 고뇌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2010년은 회화에 조소를 가미하는 형태로 넘어오는 전환기였다. 광주롯데갤러리 창작지원전으로 두번째 개인전 ‘담양소사(潭陽小事)’를 연 작가는 당시 담양에 거주하며 애완동물과 함께했던 소소한 생활 이야기, 동물과의 소통·교감을 회화에 부조를 가미한 형태로 선보인다.
두번째 개인전 이후 2011년부터 ‘토란대의 행방불명’을 통해 작품의 방향이 보였다고 말하는 작가는 “어른동화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화의 세계, 어린이의 세계를 바탕으로 어른의 세계와 정신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걸 표현해야 하고 비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니 본래 성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 같아요. 판타지적 성향은 치유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거죠. 요즘은 그림이 너무 즐겁습니다.”
작가의 작업에는 어린아이, 혹은 반려견의 모습이 등장한다. “동심은 실재하는 판타지다”고 서술하는 작가는 실제 주변의 아이들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10여년간 방문미술지도를 했던 경험에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작가는 아이들을 모델로 그림에 옮기고, 여기에 반려견, 자연 등 상상을 가미해 간다.
“방문교사 경험은 지금의 작품이 있게 한 큰 수확”이라며 작가는 웃었다.
지난해 한국복지예술재단의 창작지원금을 받으며 힘을 얻게 된 작가는 오는 11월 세번째 개인전을 서울 에이원갤러리에서 연다. 갤러리 선정작가로서 20~30점 정도를 걸 계획이다. 전시주제는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토란대의 행방불명’으로 정했다.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는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먹고사는게 고민이다. 돈을 벌려고 하면 작품을 못하게 될까봐, 또 환타지, 힐링의 감각이 사라질까봐 걱정이다. 그런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열리고 있는 광주롯데갤러리 ‘생활예찬’전은 오는 2월 2일까지 계속된다. 유년시절을 상기시키며, 잠시나마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소소한 행복을 찾게 하는 작가의 작품은 4점이 걸려 있다.
작가는 현재 백학조각회, 광주청년미술작가회, www현대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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