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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연작은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
성공 뒤 어린 고난·역경에 대한 위로·찬사 공감
오페라 갤러리 전속작가로 하반기 본격 행보 나서
서울 시작 파리·두바이·런던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
‘입체회화’라는 독창적 장르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설치미술가 손봉채 작가가 ‘이주민’ 연작으로 하반기 본격 행보에 나선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의 ‘이주민’ 연작은 그동안 스위스 바젤과 마이애미 바젤, 스페인 아르코 등 굴지의 해외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간간히 국내 미술관 등에서 선을 보였다.
작가는 오는 13일 서울 오페라 갤러리 전시로 오랜만에 국내에 작품을 선 보인다.
작가는 올 초 청담동의 오페라 갤러리와 전속작가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해외 아트페어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관심있게 지켜보던 오페라 갤러리의 제안으로 일을 같이 시작하게 됐다.
오페라 갤러리는 프랑스 계열의 갤러리로 본사인 파리를 포함해 런던, 뉴욕, 마이애미, 싱가포르, 홍콩, 서울, 모나코, 두바이, 제네바 등 세계 주요 도시 12곳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거대 상업화랑이다.
작가의 이주민 연작은 오는 9월 13일까지 한 달 일정의 서울전을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9월 초 파리를 비롯해 두바이, 런던 등 유럽과 중동의 오페라 갤러리에서 잇따라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출품 작품들은 근작 위주로 총 20~30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중학교 미술교과서에 입체회화기법이 수록돼 있을만큼 ‘입체회화’라는 독창적 장르로 국내외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온 작가의 입체회화 기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계’ 시리즈와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즈로 입체회화 작업을 보여주던 작가는 2006년부터 ‘이주민’ 연작에 들어간다.
‘이주민’ 연작은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첨단 소재의 패널 5장에 각각 그림을 그려 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조합하고 여기에 LED를 더한다.
회화와 설치미술의 중간쯤 되는 이주민은 패널 5장이 만들어낸 공간감과 입체감, 여기에 LED가 자아내는 빛의 교감으로 독특한 정서를 자아낸다.
그의 이주민 연작은 어디에도 이주민은 커녕 단 한 명의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구름을 타고 망망대해 같은 하늘 위를 망연히 떠도는 소나무, 산을 넘거나, 깎아지른 듯한 산 언덕에 위태로이 서 있는 소나무들이 아련히 화면을 장식한다.
이주민 경계 시리즈 작업을 펼치던 작가는 “어느 날 도로에서 뿌리를 동그마니 감싼 채 트럭에 실려가는 소나무들을 보고 가슴이 아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산업화로 고향을 떠나 도시로 떠나야했던 수많은 가난하고 아픈 이들, 멀리 미국으로 남미로 살길을 찾아가는 사람들. 무엇보다 뉴욕 유학시절 본 이주민들의 아픈 삶이 눈에 아렸다고 했다.
작품은 작가가 평소에 사회와 인간에 대해 가져온 연대와 공감,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이민자의 도시 뉴욕, 그곳에서 초기 이민자들은 도시 밑바닥을 책임지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과정을 거칩니다.”
가난한 시골 유학생이던 그는 이민의 성공스토리 너머에 담긴 눈물겨운 빵과 서러운 아픔, 심장을 삼켜 내야할 인내를 목도했다.
그것은 ‘드림’이라기보다는 제 땅을 떠나야 하는 현대인의 다양한 이주, 축출의 모습이었다.
“도시의 저 멋진 조경수들이 사실은 뿌리채 뽑혀 던져진 삶인 것이죠. 낯선 땅에 안착하다 수없이 죽어가고, 더러 살아남은 자들은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의 눈요기가 되는 것이구요. 이주민 시리즈는 바로 현대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19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 ‘권력’전에 ‘보이지 않는 구역’이란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작품)를 선보이며 국내외 평단의 호평 속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작품은 뒤로 돌아가는 외발자전거 바퀴 270대를 천장에 매단 설치미술작품이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힘(권력)에 의해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살아가야하는(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가는) 소시민, 약자의 처지에 대한 상징적 형상화다.
이후 작가는 끊임없이 사회와 인간의 관계, 인간존재의 근원(‘경계’) 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사회적 약자에게 던져지는 강제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조형미와 공간감이 더해지며 역설적으로 위로의 메시지로 힐링으로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공간을 제공한다.
이같은 기법의 참신성과 현대적 감각과 재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회화가 갖는 동양화,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여백과 농담의 미다.
작가는 2000년대 들어 현대적 첨단 소재에 회화를 더하고 설치미술 기법을 결합한 ‘입체회화’라는 독창적 장르를 창출해내며 다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현대적 감각과 기법에 동양적 정서를 가득 담은 이주민 연작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호응을 이끌어냈다. 가장 먼저 독일 마이클 슐츠 갤러리가 그의 작품을 전속으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를 비롯한 굴지의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이끌어내며 수많은 갤러리 러브콜을 받았다.
작가는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 참여하며 입체회화라는 장르의 저변확대를 피부로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대의 홍콩 아트바젤에서도 작품의 10%가 입체회화 작품으로 출품되는 경향이라고 작가는 전했다.
올 하반기 유럽과 중동을 거쳐 내년부터는 뉴욕을 비롯한 전세계에 작가의 이주민 연작이 어디까지 나아갈지 기대가 크다.
작가는 이주민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작품을 이제 바꿔봐야지 하면서도 아직 시점을 못잡고 있죠. 다음 작품들을 계속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이제 됐다’라고 할 시점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대 미대 출신으로 뉴욕의 프랫에서 석사를 마쳤다. 개인전 18회와 비엔날레와 다양한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