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기호 통한 바다의 신화적 재해석
전시공연

문자·기호 통한 바다의 신화적 재해석

'파도를 넘다' 김25(김이오) 작가 부산 전시
29일~6월 22일 스페이스 원지
10~300호 작품 40여점 선봬

김25 작 ‘Noah’s Ark’
김25 작 ‘Noah’s Ark’
캔버스 위에서 바다가 움직인다. 파도의 물결이 예사롭지 않다. 하늘을 향해 손짓하는듯하면서도 저 멀리서만 맴돌지 않고 눈앞으로 닥쳐온다. 물결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파도 사이로 보이는 텍스트도 수많은 물결 속 하나의 움직임이 되어 일렁인다. 김25(김이오) 작가의 바다 연작이다.

김25 작가의 개인전 ‘WAVE: Castaspell 파도를 넘다’가 오는 29일부터 6월 22일까지 부산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다. 개인전으로는 첫 부산 전시. 바다의날(5월 30일)을 맞아 부산의 초대를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자와 기호를 매개로 바다를 신화적·철학적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10호에서 300호까지 40여 점을 선보인다. 부산에서의 첫 개인전인 만큼 최근작 10점을 포함해 이전의 작업도 함께 선보이는 전시다.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하늘과 조우하며 찬란한 빛과 음영의 아름다운 대비를 이루는 대자연의 형상을 추상적이면서도 깊이감 있게 표현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김25 작 ‘The Old Man and the Sea’
김25 작가는 바다를 기호학적 상상력의 심연으로 끌어들인다. 작가는 언어의 기본 단위인 문자를 해체하고, 반복과 왜곡, 중첩이라는 시각적 변주를 통해 바다를 ‘읽히지 않는 언어’ 즉 해독 불가능한 신화적 텍스트로 재구성한다. 텍스트는 화면 위에서 더 이상 읽히기를 거부하고, 대신 파동처럼 흐른다. 언어는 의미 전달의 매개를 넘어서 하나의 시각적 리듬으로 기능한다. 관람자는 이를 ‘읽는’ 대신 ‘느끼고 해석’하는 감각적 독자로 호명된다. 지난해 서울 전시‘Cast a Spell’에서 제시됐던 페인팅 속 이미지에 텍스트를 결합하는 독특한 방식의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융합이 이번 전시에서는 더 심화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텍스트는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소리가 되며, 그 울림은 다시 공간을 진동시킨다. 최근작은 이전보다 텍스트가 줄어든 점도 눈에 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도 특별하다. 스페이스 원지는 부산 영도의 과거 산업 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적 기억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공간은 마치 잊혀진 문명의 잔해 속에서 떠오르는 기호처럼, 관람자에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구조적 거대함과 시각적 밀도가 교차하는 이 장소는 전시 작품들과의 유기적인 긴장을 통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하나의 감각적 극장으로 변모한다. 관람자는 이 공간을 유영하듯 떠돌며, 읽히지는 않지만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시각적 언어들-기호의 파편들-을 마주하며 바다의 심층을 체험하게 된다.

김태만 국립한국해양대학교 교수(전 국립해양박물관장)는 전시 서문에서 “김25 작가의 회화 속 바다는 자연적 풍경을 뛰어넘어 의미가 축적되고 전유된 장소”라며 “해양이 더이상 시각적 대상으로서의 경관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기억이 축적된 상징적 장소가 된 만큼 작가의 작업은 결국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자 질문이다”고 밝혔다.

김25 작가
김25 작가는 “부산에서 좋은 기회를 맞아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면서 “생성과 소멸의 바다에서 노아의 방주를 그렸다. 이전에 비해 텍스트를 줄이면서 무지개 약속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붓보다는 드로잉 도구를 사용했고 손가락, 손바닥, 몸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언어와 감각, 역사와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바다라는 오래된 신화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호명해본다”고 밝혔다.

김25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다. 2020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그녀의 바다 연작은 순간적인 붓질로 용틀임처럼 솟구치는 형상을 표현하며, 강렬한 에너지와 상승감을 시각화한다. 추상적 색면과 구상적 이미지를 조화시킨 작업은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평가다. 그의 작품 중 ‘노아의 방주’에서는 성경 속 방주를 문자 구조물로 재해석해 문명의 구원과 소멸을 상징적으로 담아냈으며, 2023년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 ‘파란, 일으키다’에서는 해양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였다.
최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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