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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에는 수많은 고비가 있기 마련이고,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도 그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기듯, 우리의 삶에도 사소한 갈등에서부터 시험 낙방, 이별, 질병, 해고 등과 같이 우리 자신에 대해 좋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하는 수많은 경험으로 가득하다. 그러한 위협들로부터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없이 무너져내리는 이들도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정신건강 분야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자기 자신에 대해 경험하는 특징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즉, 인생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심이 된다. 이는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느낌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자기 중감)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에 반응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각자에게 고유한 지문이 있는 것처럼, 힘든 감정적 상처에도 자신에 관한 긍정적인 느낌을 유지할 수 있는 이도 있지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종일 불쾌감에 사로잡히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뭔가 일이 잘 풀릴 때 우리 자신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는 것은 쉽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에 관한 좋은 느낌을 유지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이렇듯 자기존중감이 타격받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은 수많은 삶의 위협들에 반응하는 방식의 핵심이 된다. 가령, 원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기 탓을 하며 우울해하거나 외부로 화살을 돌려 분풀이를 하는 반응은 경직되기 쉽게 하고 고통을 초래하지만, 자신을 객관화시켜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는 방식은 유연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반복되고 축적될 때 자기존중감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존중감의 차이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환경에 적응하며, 사고력과 판단력을 형성하고, 일에서의 성취와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등 모든 방식의 차이를 결정하는 초석이 된다.
우리는 현재 25년 6월의 한 날을 받아놓은 상태에서 전국의 민심은 요동을 치고 있다. 해외 언론에서는 친위쿠데타에서 헌법을 실현하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그리고 시민들을 다루며 열광했고, K-민주주의라는 용어도 익숙해졌다. 그렇다. 우리는 지난 겨울의 광기와 폭력을 아무런 예고 없이 경험하면서 정치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무력감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형성한 한국인만의 민주주의와 자유의 잔고가 추가된 셈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국인의 자기존중감은 우리 민족이 미래에 어떻게 기능하는가의 핵심이 될 것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통치구조와 국민의 권리 의무를 규율한 최상위 법으로, 대한민국의 어떤 법도 이 헌법을 거스를 수 없고, 헌법에 위반된 법률은 효력을 상실한다. 2025년 국민 모두가 이러한 헌법의 중요성과 그 힘을 목격했듯이, 각자의 마음을 지키는 힘, 마치 마음의 헌법과도 같은 자기존중감에 대해 탐색해보고, 조각가가 공들여 작품을 만들어가듯이 그렇게 우리 자신에 대해 돌보고 가꾸는 방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했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영웅이자 우리의 추억이 된, 열사 윤상원의 마음을 생각하노라니 마음 한켠이 짓눌리면서도 태양을 바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렘과 희망도 함께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