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동북 3성을 찾아서 - 단동(丹東)
떠나자세계여행

한민족의 뿌리 동북 3성을 찾아서 - 단동(丹東)

압록강 하류 국경도시 경의선 복원공사로 대륙관문 부푼 꿈
인천서 훼리 타면 아침 도착…코스 편해져
끝없는 장백산맥·만주평야, 고향에 온 느낌
금강산 공원 올라보면 단동·신의주 한눈에

압록강 단교. 끊어진 다리로 방송할 때 자주 등장한 곳이다. 끊어지지 않은 철도와 차량이 다닌 철교.
여행을 몸으로 하는 독서라고 한다. 살면서 여행보다 유쾌한 일을 꼽는다면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선물같은 여행은 배터리가 방전된 몸과 마음, 육체를 충전하는 시간이 된다. 최근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며 소그룹별, 개인 취향에 따라 여행하는 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본지는 격주 금요일자로 '떠나자! 해외여행' 연재를 시작한다.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장과 여행전문가 강영옥 (주)알지오 대표가 세계의 추천 여행지 및 새로운 여행 트랜드와 각 나라 여행지 문화 등 실속있는 여행 정보를 전할 예정이다.





한민족의 시원(始原) 백두산 이야기부터 시작하려 한다. 예전에는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북경-연길-백두산이나, 서울-심양-연길-백두산으로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심양이나 연길을 통해서 바로 갈 수 있다. 한민족의 뿌리인 동북 3성을 가기 위해 인천에서 훼리를 타고 자면서 아침이면 도착하는 아주 편한 코스도 있다.

단동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북한이 빨리 개방해야 할 곳은 신의주라는 것이다. 신의주는 두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신의주 사람들은 매일 강 건너 중국의 단동이 날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언제 저렇게 잘 살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단동에서 심양은 물론 대련, 장춘, 길림, 하얼빈, 연길까지 고속도로나 고속열차가 다니고 있으니 아주 편리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장백산맥과 만주평야는 우리나라 지형과 같아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 든다.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잡혀갈 때 소현세자의 '청석령 지나거나, 초하고 어드메오, 호풍도 참도 찰사, 궂은비는 무슨일고, 아무나, 행색 그려내어 님계신데 보내고져'라는 시조를 생각한다.

청석령은 푸른 돌이 많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통할 수 없고, 초하구는 옛날에 비해 초라하지만 옛날에는 소선사신들이 디니면서 묵은 지역이다.

단동은 옛날에 안동(安東)이라 불렸다. 지금도 신의주를 마주하고 있는 음식점 안동각이 있으며, 신의주에는 압록강각이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중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이 고종황제의 둘째 왕자이며,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李堈)을 상해로 탈출시켜 망명정부의 구심점을 삼으려 했으나, 단동에서 붙잡혀 허사로 돌아간 것이 1919년 11월에 일어난 대동단사건이다.

이곳에 금강산(錦江山)이 있는데, 우리의 금강산(金剛山)과는 한자가 다르다. 금강산공원에 올라보면 단동과 신의주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옛날에는 단동이나 신의주가 크기가 비슷한 도시였다고 하지만, 신의주와 단동은 격차가 너무 심하게 느껴진다.

단동은 몇 년 전부터 한국 붐이 일고, 많은 한국인의 상점이나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한국의 붐이 일면서 한국식당도 많고 다방도 많다. 북한식당도 많으며, 북한의 물건이나 그림과 골동품을 파는 상점도 많이 있다. 저녁에는 압록강 철교 주변으로 약 2km 거리에 야시장이 들어선다. 그곳에 파는 물건들은 한국에서 직수입을 알리는 글자가 눈에 띈다.

신의주와 철길로 연결되는 단동은 압록강 하류의 국경도시로 경의선 철도의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대륙관문의 꿈에 부풀어 있다. 강변에 나가면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자리잡고 있다. 압록강은 물빛이 오리 머리와 같다고 하여 오리 압(鴨)자에 푸를 록(綠)자를 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경도시인 단동에 들어와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를 바라보는 순간 국경선에 대한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국경선이라면 철책선이 둘러쳐져 있고, 총을 든 병사들이 밤낮으로 경계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압록강에는 그런 국경의 긴장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지금은 탈북자들을 막기 위해 철조망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어 국경선이 실감난다.

방송에 너무나 낯익은 동강난 압록강 철교가 관광의 명소로 되었고, 옆의 다리는 기차와 자동차가 오가고 있다. 압록강 유람선은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구 쪽으로 내려가면서 관광객에게 구경 잘하라는 듯 신의주 쪽 강변으로 바짝 붙여 서서히 몰아주기도 한다.

강기슭을 돌아서면 벌거숭이로 미역을 감는 아이들이 물 속에 깊이 들어가며 부끄러움을 감추기도 한다. 압록강은 정말로 아름다운 강이며, 길이 790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다. 압록강 단교는 1909년에 건설하여 1911년에 완공되었다. 안동-봉천 철도를 개설할 때 만든 것으로 길이는 944m로 90도 각도를 회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110여년 전에 이런 기술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일이다. 이 철교는 1950년 11월 14일 6.25 동란 때 미군이 중공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폭파했는데,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현존 철교는 1937년에 건설해 1944년에 완공된 것으로 길이가 946m이다. 압록강 단교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유난히도 맑아 보인다.

백두산으로 여행갈 때 도문에서 두만강을 바라지만, 압록강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중국과 북한간에 새로운 압록강대교를 건설했으나 북한측에서 개통하지 않고 있다. 황금평과 비단섬은 얼핏보면 단동에 붙어 있어 중국 땅처럼 보인다. 62년에는 단동과 황금평 사이에 압록강이 흘렀으나, 그 후 50년 세월에 퇴적물이 쌓여 1m정도로 좁아졌다. 북한과 중국이 2011년 6월 8일 황금평에서 공동개발 사업 착공식을 가졌으나 장성택 처형으로 출입국사무소만 만들어진 그대로 남아 있다.

용비어천가에 '가람 가에 자거늘 밀물이 사흘이로되 나가서 잠겼다. 섬 안에 자실 제 홍수가 사흘이로되 비어서 잠겼다'의 섬이 바로 '위화도'이다. 이 섬은 고려말 최영장군이 이성계에게 요동을 정벌하라고 했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하고, 4불가론을 주창,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으니, 당시 주인 없는 땅을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압록강 사이에 있는 대부분의 큰 섬들은 북한에 속해 있다. 1962년 북한 김일성과 중국 주은래(周恩來)가 조-중 국경조약을 체결할 때의 일이다. 강 가운데 있는 섬들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중 김일성이 불쑥 이런 말을 던지고 나섰다고 한다.

"그 섬들 다 드리겠소!"

주은래가 빤히 바라보자 김일성은 "그 대신 하나만 내 주시오."

"뭘 말이오?"

"집안(集安)만 우리한테 넘겨주면 됩니다."

압록강에 맞닿은 집안은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이 있는 고구려 옛 수도 국내성이다. 깜짝 놀란 주은래는 부랴부랴 섬들을 다 줘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북-중 국경의 451개 섬 중에서 북한령은 264개, 중국령은 187개다. 면적으로 보면 북한이 85.5%를 차지한다. 국경조약 2조 1항에는 '조약 체결 전에 이미 한쪽의 공민(公民)이 살고 있거나 농사를 짓고 있는 섬은 그 나라의 영토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강원구(행정학박사· 한중문화교류회장)

오늘의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