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 중국 질주를 넘어야 할 시간
사회

전기차 산업, 중국 질주를 넘어야 할 시간

류명호 한국폴리텍대학 스마트전기자동차과 교수

류명호 한국폴리텍대학 스마트자동차과 교수
전기차 산업이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한때 기술 후발주자로 평가받던 중국은 전기차 분야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질주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재편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60% 이상을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BYD와 CATL은 각각 완성차와 배터리 부문에서 독보적인 선두 자리에 올라섰다. 이들이 이룬 성장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우위와 기술 혁신, 그리고 정교한 시장 전략이 결합된 결과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배터리와 핵심 부품의 내재화다. BYD는 배터리 셀부터 완성차 조립까지 전 공정을 자체 수행하며 생산 비용을 낮추고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했다. CATL 역시 리튬 채굴부터 고성능 셀 생산까지 수직 계열화를 실현해 가격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중심으로 안전성과 경제성을 모두 갖춘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둘째,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약 300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충전 인프라를 대도시 중심으로 빠르게 확충했다. 아울러 전기차 구매자에게는 번호판 우선 발급, 통행 혜택 등의 유인책을 제공해 내수 시장을 급속도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기반은 곧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이어져 생산 단가 절감과 해외 시장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셋째, 소비자 중심의 모델 다양화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3,000만원 이하의 경형차부터 고급 SUV까지 약 100여 종의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특히 BYD Dolphin, Qin Plus, Seagull 등 보급형 차량은 실용성과 경제성을 중시하는 유럽과 동남아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중국산 전기차가 전체 판매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현지 공장 설립을 통해 관세 장벽도 효과적으로 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전기차 산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내수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또 다른 과제다. 배터리 기술 내재화, 보급형 전기차 모델 확대, 프리미엄 서비스 차별화, 충전 인프라 고도화 등 전방위 전략이 동시에 추진돼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안전성과 품질, 그리고 A/S에 대한 신뢰를 지켜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기차 구매 이후의 사용 경험 전반을 설계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차량 구독, 장기 리스, 배터리 교환형 플랫폼 등 새로운 소유 모델을 통해 소비자의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추고,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중소 부품업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와 기술 고도화 지원도 반드시 병행돼야 국내 전기차 산업 전반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에너지와 기술, 환경과 산업이 복합적으로 얽힌 미래 산업의 플랫폼이다. 이제는 더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더 빠르고 안전하게, 더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가는 방식으로 진화하며 각 국의 자동차 산업은 경쟁 중에 있다. 지금 우리는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갈림길에 서 있다. 속도와 전략, 그리고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승부에서 결코 늦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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