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순천대 여순연구소 송은정 박사
전남동부

인터뷰-순천대 여순연구소 송은정 박사

“폭력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여순항쟁 재평가”
“철저한 고증·검증…역사적 진실 조명해야”
“특별법 제정 위해 여순연구소도 적극 동참”

[전남매일=동부취재본부] 우성진 기자=한국 현대사가 풀어내야 할 매듭 중 하나인 여순사건. 이에 대한 역사적 재조명과 증언 채록, 시민인권교육 등을 통해 성과를 쌓아가고 있는 순천대 여순연구소를 지난 15일 찾았다.

여순연구소 송은정 박사를 만나 여순사건에 대한 연구소 활동과 특별법 제정,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들었다. 다음은 송 박사와의 일문일답.

- 여순사건에 순천대 여순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상당히 깊다.

▲ 지난해 출범한 우리 연구소는 4권의 책을 출간하고, 3차례에 걸린 학술대회를 치렀다. 3학기 째 시민대상 인문학 강좌와 현장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잡지 ‘시선 10·19’ 2호의 편집 교정 작업까지 마쳐서 곧 발간한다. 순천시 여순사건구술채록 사업을 수행해 120여명이 넘는 순천시 피해자, 유가족 등의 증언을 채록해 결과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있다. 이달에 2차례의 학술대회와 1차례의 유족증언본풀이 참여, 올해 2회째 수행하는 인문학술주간 행사 시행 등을 앞두고 있다.

- 한국 현대사가 풀어내야 할 매듭 중 하나인 여순사건에 대한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 1948년 10월에 작동했던 국가폭력의 억압기제는 7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지 아직도 여순항쟁에 대한 실체규명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규명작업이 미비하다.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고 이념적으로 분열시켜 사회적·지역적 대립을 조장했던 좌·우익 사상의 칼날은 여전히 예리하고, 우리들 역시 ‘빨갱이’ 또는 ‘반란의 고장’이란 이름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기도 한다.

여순항쟁은 지역민 모두를 반란자로 몰아갔던 이름으로도, 단순히 어느 한 부대의 몇몇 사상이 불순한 자들의 명령불복종 행위로도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부당한 국가권력은 국가보안법과 ‘빨갱이’라는 예외자를 만들어 국민의 표상을 분명하게 하면서 공포와 증오를 작동시켜 민중을 죽음과 침묵 속에 몰아넣어왔다.

이제는 분단 한국을 종식시키고 통일 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부당한 권력이 자행하는 억압과 폭력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여순항쟁은 다시 평가되어야 한다. 여순항쟁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은 이념갈등을 종식시키고 평화와 상생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꼭 풀어내어야 할 한국현대사의 매듭의 시작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 재조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71년 전 저항과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던 당대인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여순항쟁을 역사적으로 생생하게 재생해내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접근과 각 분야의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역사와 다양한 기록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검증, 법체제와 정부 행정 체제 같은 사회학적 분석, 정치와 철학을 통한 역사 구성의 원리, 문화와 예술에 반영된 당대인들의 인식과 감정들을 통한 생생한 이해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만 우리는 그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특별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인가.

▲ 특별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가 높은 것은 분명하다. 지역에서의 움직임도 그렇고 지난 7월 4일 창립한 여순사건 서울 유족회(회장 이자훈)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2인 1조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고,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들을 직접 찾아 빠른 시일 내에 여순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발표가 있기도 하다. 전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이 여순사건 특별위원회의 활동연장에 대해 추후구성을 논의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 지역민의 아픔들을 가까이서 접해 왔을 전라남도의회가 이 같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국회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매우 안타깝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 연구소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 순천대 여순연구소가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 또는 역점 사항이 있다면.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적 진실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조활동이 절실하며 그것들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학제적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무엇보다 유가족을 만나고 피해자 증언을 채록하는 동안 더 절실히 알게 됐다.

유가족들의 고령화 뿐 아니라 그 다음 세대들이 겪고 있는 부모들의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에도 주목할 때다. 부모 혹은 조부모가 마주했던 공포와 증오, 침묵과 마비의 사건으로 인한 외상은 고스란히 그 후손들에게 흔적들을 남겼다. 또 부모와 가족의 상실로 인한 삶 전반에 드러나는 결핍이 낳은 문제들은 ‘아버지 부재’와 같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어 세대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이 점에 주목하고, 이 치유를 위한 따뜻한 손길과 가슴을 더하는데 특히 더 주력하려고 한다.

- 여순사건 재조명과 관련해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 대립과 갈등을 통한 유일한 승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참 무섭다. 마치 그것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여길 때는 더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다.

여순항쟁이 그러한 정쟁의 장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순항쟁은 손가락질 했던 너와 나, 좌익과 우익, 빨갱이와 진압군의 대립과 갈등이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우익으로 분리되었던 너와 나는 모두 반공이라는 종교적 국가 이념을 이용해 국민이라는 꼭두각시를 양산하려는 부당한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면서 죽음의 공포를 공유했던 우리이다. 우리가 재조명해야 할 것은 너와 나가 서로 손가락 총을 쏘며 쓰러져가게 했던 부당한 국가폭력이고, 그 앞에서 공포와 침묵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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