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처럼
에세이

봄볕처럼

김향남(수필가·문학박사)

이즈음 자주 가는 곳이 있다. 담양 금성산 자락에 있는 조그만 산사인데, 자동차로 30분쯤 걸린다. 언제라도 훌쩍 갈 수 있는 곳이니 가장 만만한 장소라고 할까. 울도 담도 없는 절답지 않은 절이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곳이기도 하다. 굳이 경계를 두지 않아 우리 같은 얼치기들도 주저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심심찮게 찾곤 한다.

처음엔 어디 바람 쐴 만한 곳 없나 해서 갔고, 그다음엔 갈 때마다 자꾸 다른 이유가 생겼다. 전설의 동굴법당-탐관오리를 응징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앞장섰다는 전우치가 도술을 익혔다는 곳-에서부터, 어느 불심 깊은 석수장이가 서툰 솜씨로 깎아낸 듯 구부정하게 서있는 지장보살 입상, 막힘 없이 툭 터진 야외법당, 한없이 소박한 스님 한 분, 스님이 열어놓은 무료쉼터, 그 안에 모셔놓은 각양각색의 나한들, 장작 난로와 군고구마,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늘한 대숲. 그곳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 그리고 두 마리의 견공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먼 것이 확실하지만 그게 대수랴.

코스는 정해져 있다. 입구에 차를 두고 걷기 시작해 대숲을 지나 산성길을 조금 오르다가 방향을 틀어 산사로 내려오는 것이 전부다. 앞에서 열거한 것들을 차례대로 거쳐 오는 셈인데, 보는 것은 매양 같아도 느끼는 건 그때그때 다르다. 가령 키 큰 대숲 사이를 걸을 때, 어떤 날은 곧게 뻗은 대나무의 위용에 반해 그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정결해지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어떤 땐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내 안의 검은 구름만 뭉텅뭉텅 빠져나와 눈앞조차 암암해질 때도 있다. 대숲을 벗어나 산사로 내려오는 중간쯤엔 제법 널찍한 바위 하나가 있다. 어떤 땐 그 위에 벌렁 누워 잠깐의 휴지(休止)를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그냥 스쳐 간다.

암벽 아래 구부정하게 서있는 보살님 얼굴도 어느 날엔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했다가, 어느 날엔 수심 깊던 우리 아버지 얼굴 같아 공연히 애틋해지기도 하고, 어떤 순간엔 전지전능한 신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겨우 삼배를 했을 뿐인데도 깊은 위로를 받은 듯 따듯해지기도 한다. 삭발한 민머리에다 이마에 긁은 주름을 두른 그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생들의 영혼을 모두 구제한 뒤에야 비로소 부처가 될 것을 서원했다는 지장보살 입상이다. 저 멀리 고려 때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보살의 역사는 무려 천년을 거스른다. 그래서 그런가, 수그린 듯 찡그린 듯 덤덤한 얼굴에 온갖 풍상이 다 서려 있다.

오늘은 그 아래서 쑥을 캤다. 소보록히 돋은 쑥이 발아래 널려 있어 어디 딴 데 기웃거릴 필요도 없었지만, 사실은 거기 서성이는 것이 좋았다. 앞은 툭 터져 환하고 뒤는 천년 보살이 호위하는 명당자리가 바로 여기 아닌가. 쑥도 쑥이지만, 초연히 서있는 보살님 또한 기꺼워 보였다. 암, 잘 견디고 있구나.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에 처해 갈팡질팡 힘겨워하는 우리를 가만가만 다독여주는 것도 같았다. 천년의 세월을 지나와서도 여전히 중생을 구제하려 진종일을 서있는 돌 보살 앞에서 우리는 기껏 쑥이나 캐고 있었지만, 그 순간은 정말이지 아무 걱정도 없었다.

오래전 어느 봄, 우연찮게 거길 갔었다. 산속 외진 곳에 불현듯 서있던 게 마음에 닿았던가. 내내 잊고 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졸지에 된서리를 맞은 우리는 시르죽은 풀처럼 갱신하기도 어려웠다. 구차한 모습을 내보이기도 싫고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한사코 꺼려졌다. 두문불출 칩거 중에 어디 가까운 데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 집을 나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고풍상을 다 겪은 듯 신산해 보이는 한 보살이 거기 있었다. 다 늙어 아픈 몸으로 아직 어린 막내를 애잔히 바라보던 그 눈빛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은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았지만, 묵묵히 수그린 발치 아래 엎드려 다복다복 쑥을 캐어 담는 시간은, 봄볕처럼 따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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