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천차(千人千茶)
에세이

천인천차(千人千茶)

김용국(전남문협 회장)

김용국
올해 보성다향대축제는 특별한 행사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것은 1,000명이 한복을 입고 찻잎 따는 것을 기네스북에 올리는 것입니다. 한복이 없는 분은 대여를 해주고, 자기 한복을 입고 오면 세탁비 1만5,000원을 줍니다. 1,000명이면 요즘 1개 면의 인구수와 맞먹습니다. 나 한 사람이 1/1,000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동참했습니다. 특별한 감동도 기대했습니다. 작년 겨울에 차밭 빛축제를 했던 그 차밭입니다. 차밭 맞은 편 보성청소년수련원 쪽에서 진행자가 안내하는 대로 차나무 이랑에 섰습니다.

찻잎이 작고 듬성듬성 있었습니다. 1창 2기의 세작입니다. 어제 다향제 행사장의 차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차를 살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친구 가게 죽로차에서 두 부인과 함께 차를 시음했습니다. 재작년에 시가 흐르는 행복 학교에서 학우들에게 권해서 칭찬을 받은 유기농 발효차 미홍을 샀습니다.

같이 있던 중국 여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우전차와 첫물차의 다른 점을 묻습니다. 김소이 여사의 설명을 듣고도 망설이고 있기에 내가 거들었습니다. 순한 죽로차 우전차는 가격에 비해서 아주 좋고 맛있다고….

그런데 중국인이 값을 자꾸 깎아주라 합니다. 김여사가 올 봄은 가물어서 찻잎이 작고 생산량이 적으니 제값을 주라고 합니다. 가문 봄! 차향은 예년보다 더 깊을 것입니다. 어제 내가 차를 산 가게마다 덤으로 차를 더 주신 정이 아련했습니다. 원당제다의 서리꽃이 핀 차의 우전차와 비트홍차, 호지차 한 아름, 백연골발효차의 오감차 진액, 보성제다의 유기농 아름다운 홍차 이야기, 옥수다향의 우엉과 도라지와 연근으로 만든 우도연! 응원하러 들렀다가 오히려 다정(茶情)을 듬뿍 안고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있는 곳에서 소리꾼이 판소리를 합니다. 차와 소리의 고장다운 발상입니다. 내 앞의 할머니는 사랑가의 흥에 겨워서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십니다. 판소리를 배우는 나도 나직나직 따라 부르다 추임새를 넣곤 했습니다.

정오에 사랑가를 들은 찻잎은 어떤 맛일까요? 옛 어른들은 학동들이 먹을 차는 이른 아침에 동쪽 잎을 땄고, 제사에 쓸 차는 해질녘에 서쪽 찻잎을 썼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은 젖소는 우유가 맛도 좋고 양도 많이 나온답니다. 오늘 차는 흥겹고 희망찬 선율과 당당한 힘이 우러나는 청춘의 차가 될 것입니다.

나는 1창 2기를 한 톨 한 톨 끊는데, 할머니는 양손으로 휙휙 뜯으십니다. 딴 찻잎 양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내 곁의 서양인 부부는 나보다 훨씬 미숙합니다. 내가 부인의 바구니에서 묵은 찻잎과 찻잎이 아닌 것을 골라서 버리고, 내 찻잎 절반을 드렸습니다. 남편 찻잎과 합해서 한 바구니 가득 되어야 100g 정도의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은 찻잎은 벌교 아또 이준옥 님의 찻잎 부침개를 사 먹고 다 드렸습니다. 하얀 찹쌀가루 반죽 위에 초록 나비처럼 앉아 있는 찻잎에 봄 향이 가득할 것입니다.

맛있고 건강에 좋고 미세먼지를 잘 배출시키는 차를 만들면서, 찻잎 위의 이슬방울 같은 해맑은 웃음 가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찻잎은 같지만 만든 차의 맛과 오늘의 추억은 천 사람이 천 가지일 것입니다.

작설들이 내년에는 만 명이 오시라고 종종대고, 찻잎들이 보성 계단식 차밭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깊은 밤에 ‘천인천차’라는 시 한 편을 땄습니다.

‘황금돼지해 보성다향대축제/ 한복 입고 찻잎 따며 꿈속에 든다.// 봄 햇살 어루만지고 바람이 머무는/ 손톱만한 초록 생명이/ 순수하고 뜨겁게 기다렸던/ 순하나 도도한 꿈톨을 내준다.// 천 걸음에 차밭 찾아온/ 천 가지 이야기 머금은 차들/ 봉갑사 제일 좋은 샘물에 우려 마시면/ 나를 잊고 너를 위해/ 봄 하늘 갉작이며 초록 물들인 시간 얻어/ 웃는 엄마 눈 맞춘 아가 웃음들/ 하늘로 오르는 풍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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