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간재 편집국장 |
하느님과 인간, 수직적관계서 수평적 관계로 정립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첫걸음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만인은 신학 사상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시민교육을 역설했다.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학교 설립도 강조했다. 이후 교황과 교리가 지배하는 역사에서 국가의 책임 아래 교육받는 공교육 시대가 열리게 됐다. 루터의 교육개혁은 종교개혁 중 가장 대중들에게 도움을 준 성과물로 평가 받는 이유다. 교리에 얽매인 삶을 살던 중세인들에게 인간의 참 삶을 돕는 교육이 시작됐으며 여자 역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여권신장의 첫 시도다. 마틴 루터의 죽음을 무릅 쓴 투쟁 덕택에 하느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가 수평적, 평등한 관계로 정립되는 혁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맹자가 살던 춘추전국시대. 왕들의 횡포·폭력은 극심했다. 백성들은 왕은 천자, 즉 하늘에서 정한 자라 생각했기에 함부로 비난조차 못했다. 그러나 맹자는 반박했다. “성선설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게 태어났다. 어린아이가 우물로 빠지려할 때 구해주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저 왕은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데 눈빛하나 변하지 않는 걸 보니 필시 인간이 아닐 것이다. 인면수심의 인간으로 한낱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필시 저자가 천자일 리가 없다. 저런 왕은 내쫓아도 죄를 짓는 일이 아니다(역성혁명론). 하늘이 나를 버린 줄 알았는데 왕 저 자가 인간 탈을 쓴 짐승이었구나. 내쫓아도 왕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인 거나 다름 없다. 백성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 한 왕을 비난할 수 있으며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왕을 내세울 수 있다.”
우리는 맹자 하면 교과서에서‘성선설’을 주장한 유학자, 정치사상가 정도로 배웠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맹자의 저 말을 듣고 해방감과 희열을 느꼈을 법하다. 그시대 사람들에게 위로와 해법을 제시한 사상가였기에 아직도 우리는 그의 사상을 존중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에 도를 만들어본 적 없어. 그저 중국 도를 따르면 되었어. 그들이 불도를 믿으면 우리도 불도를 믿고, 그들이 유도를 따르면 유도를 따랐어. 그런디, 수운 선생(동학 창시자 최제우)은 새로운 도를 만들어낸 것이여.(서범규 훈장 강론)”
최근 김민환(80)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가 한국 근대사 최대 비극이자 희망인 1894년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소설 ‘등대’를 출간했다. 1909년 완도군 소안도에서 일어난 ‘등대 습격 사건’이 모티브다. 일본 제국주의 무력 진압에 처참히 패배한 이후 1910년 나라를 빼앗기는 국치를 당하기까지 십수 년에 걸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등대 습격 사건 뿌리에는 동학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했다. 표현 그대로 ‘K사상’인 동학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당시 소안도 주민들은 ‘나’를 주인으로 하는 사상에 천착했다. 동학사상인 인내천 ‘내가 곧 하늘이다’는 인식이다. 하느님과 군주가 주인이고 인간은 종과 신하라는 서학과 유학의 궤를 달리 한다. 서당꾼들에게 동학을 가르치던 서범규 훈장도 사상 전파에 한몫 했다. ‘하늘이 곧 나이며 내가 곧 하늘’이라니. 철저한 계급사회를 거부하며 ‘나도 곧 하늘’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던 동학도들의 위대함에 다시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소설 ‘등대’에 흐르는 정신은 민족의 혼, 역사의식을 지닌 호남인들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다.
며칠 전 김민환 교수로부터 장편소설 ‘등대’를 선물 받았다. ‘담징’(2013)과 ‘눈 속에 핀 꽃’(2018),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2021) 이후 네번째 소설이다. 6년 전 ‘눈속에 핀 꽃’을 읽고 칼럼을 쓴 이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김 교수가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재직 당시 사회학과에 다니고 있어서 사회대 강의실 인근에서 마주쳤던 인연도 한몫했다.
역사의 수레바퀴 거꾸로 돌려선 안돼
세상이 어수선하다. 느닷없이 포항 앞바다에 수백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됐다는 뉴스가 나오질 않나 한 군인의 죽음에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꼼수가 난무하는 요즘이다. 석유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가 대세인 21세기에 산유국의 꿈이라니. 석기시대는 돌이 없어져서 사라진 게 아니라 그보다 더 우수한, 더 나은, 더 효율적인 도구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점을 모르는듯 하다. 최근 열린 채상병 특검 청문회에서도 진실을 말하려는 자와 거짓으로 빠져나가려는 자들의 모습을 구분할 줄 알게 됐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깜냥 안되는, 알량한 자들의 우격다짐에 국민 인내의 임계치도 정점으로 치닫는 양상이다.‘정치는 삼류’라던 어느 경제인의 진단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통해 하느님을 인간과 대등한 관계로 끌어 내렸고 맹자 역시 백성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인면수심의 왕은 내쫓아도 된다고 외쳤다. ‘인간은 하느님과 군주의 노예요 신하가 아니라 내가 곧 하느님’이라며 대동세상을 부르짖던 동학 사상을 우리네 위정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거꾸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