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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냄새

손녀가 나를 보자 냅다 달려와 품에 안긴다. 나도 꼬옥 안아준다. 아이의 작은 가슴에서 팔딱이는 숨소리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귀보다 가슴으로 듣는 소리가 더 좋은 것 같다. 매 주일 우린 이렇게 교회에서 만난다. 뭐가 그리 바쁜지 좀처럼 한가롭거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아이들도 바쁘고 제 아빠 엄마도 마…

2022.11.23 17:02

꼬꼬마

하늬바람 부는 계절이면 연을 날리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날려 나의 소년 시절의 소담한 꿈을 아이들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연날리기를 좋아했다. 학교를 마치면 감나무에 매달아 두었던 가오리연을 가지고 빈 들판 바람받이 언덕에서 동무들과 함께 연을 날렸다. 동무들 중에는 …

2022.11.16 18:44

가을날, 문득…

순전히 소슬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탓이었다. 창망하게 드높은 하늘도 한몫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소화(素花)를 찾아 나서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쑥 길 위에 섰다.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로 가는 길, 주암호를 건너 석거리재에 이르는 동안 길가엔 코스모스가 온 힘을 다해 가을을 피워내고 있다. 흰 꽃이라는 뜻의…

2022.11.09 16:26

헛꽃

목수국 꽃이 탐스럽다. 헛것의 힘으로라도 넘보아선 안 될 것을 넘보고 싶다는 뜻일까. 헛꽃이 화려하다. 가녀린 줄기에 달린 한 무더기의 허세. 나도 저 허황기처럼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헛꽃을 피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하루는 친구가 자신의 딱지를 자랑했다. 그 당시 우리는 색이 바랜 …

2022.11.02 22:35

동짓달 열이틀

한 해 중 가장 마음이 급해지는 달이 동짓달일 것 같다. 동짓달은 그 해의 달력 마지막 한 장을 남기기 전의 달이기에서만이 아니라 올 한해도 다 가고 있네 하며 한 해의 끝을 실감하는 때여서이다. 하지만 내게 동짓달은 또 다르다. 바로 내가 태어난 시작의 달이면서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마지막의 달이기 때문이다…

2022.10.26 18:05

마음의 빛깔

마음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하루에 6,000가지의 생각을 하며, 즐거움, 사랑, 희망, 슬픔, 분노, 질투, 역겨움, 두려움, 죄책감의 아홉 빛깔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지혜나 경험, 습관에서 비롯된 생각들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마음 상태에 따라…

2022.10.20 13:24

뒤늦은 축복

안경 도수를 좀 낮춰도 되겠다는 안경사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뱅글뱅글 도는 무거운 안경으로 인해 생긴 일들이 앞뒤도 없이 와락 밀려든다. 여름이면 땀에 뒤범벅이 된 얼굴 위로 자꾸만 흘러내리는 안경의 불편함이나, 추운 겨울 김이 서려 더듬거리던 일들은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를 하다가 엎드린…

2022.10.12 19:09

나만의 종교, 수석

지인으로부터 매미 무늬가 있는 수석을 선물받았다. 금방이라도 날갯짓을 할 것만 같았다. 저 매미 무늬는 수천 년 동안 돌 속으로 들어간 비바람과 햇빛과 움직이는 지층의 힘으로 목숨을 이어왔을 것이다. 여름과 겨울을 뒤집어쓰고 천적이 없는 돌 속에서 짱짱한 날개와 푸른 목소리를 완벽하게 꿈꾸었을 것이다. 과거 …

2022.10.05 17:37

별대추가 열렸다

대추가 열렸다. 3년 전에 심었던 대추나무다. 많이 열리진 않았으나 제법 알 굵은 몇 개가 저도 대추란듯 호기롭게 열려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누가 저더러 대추라며 대추를 열라 했는가. 아니다. 제가 대추인 줄 알고 스스로 알아서 대추를 연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만큼 햇살 한 줌 바람 한줌 천둥 한 소리의 사랑을…

2022.09.28 16:09

영혼처럼 빛나는 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어머니! 아버지! 가만히 불러보면 눈물이 난다. 청소년 시절에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내 삶에 있어 부모님의 부재는 어두운 세월 저편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동안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문학 작품을 통해 하소연한 바 있지만 나이가 더해 갈…

2022.09.21 20:42

은둔

어느 해인가 가을이었지 싶다. 깊은 산골짜기에 세상과의 인연을 접고 숨어 있는 한 부부를 찾아간 적이 있다. 부부는 자식을 버린 죄인이 살아 무엇하겠냐며 빛조차 차단된 방안 깊숙이 웅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조용하고 아름다운 읍내(邑內)에서 함께 자랐다. 심하게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몸 상체를 …

2022.09.14 16:19

맨드라미 꽃차

물을 붓자 찻잔에서 맨드라미꽃이 붉게 핀다. 저 붉음은 최선을 다해 붉어지고 독해져야만 뜨거운 여름을 건널 수 있다는 뜻일까. 붉다 못해 독해지는 것이 삶의 수단이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위협적인 열정 같기도 하고 치명적인 독 같기도 한 맨드라미가 물을 머금자, 닭의 볏처럼 꽃잎을 활짝 연다. 퇴로가 없는 …

2022.09.07 17:51

전설속으로 가다

여행은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가는 것이기보단 그가 보여주는 것을 보러 가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제24차 한국수필 해외심포지엄은 2020년에 갈 거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다 코로나로 멈추고 말았었다. 그러길 만2년 그때보다 더 크고 부푼 꿈을 안고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울란바토르에 도…

2022.08.31 17:07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살아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아름답다. 우리 인간도 모든 동식물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아름답다. 그래서 행복한 삶이란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들에 핀 풀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연스럽게 이 세…

2022.08.24 18:02

건강 비망록

일찌감치 그럴 조짐이 있었다. 눈만 뜨면 팔짝거리는 것이 아이들의 천성이건만 웬만해선 발걸음조차 크게 떼는 법이 없었다. 걸핏하면 체육 시간에도 나무 그늘에 앉아 청강생으로 지냈고, 연중 최고의 축제인 운동회 날마저 할머니나 어머니 옆에 꼭 붙어 앉아 구경꾼 노릇을 했다. 청백 계주다 100m 달리기다 해서 온 동…

2022.08.17 17:20

그 남자의 글쓰기

길가의 은행나무가 가지치기 당해 몸통만 남아 있다. 나무는 아픔을 삼키며 곤두박질치는 생을 간신히 바람으로 떠받치고 있다. 지난가을에 노랗게 물든 전성기 한 권을 출간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은 것일까. 아직은 칸칸마다 비어 있는 공중의 원고지에 새순 같은 문장들을 다시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자 탈자 …

2022.08.10 18:02

우체통을 찾으며

빨간색이다. 반갑다. 아니 고맙다. 없어지지 않고 있어 준 것도, 이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도, 이리 쉽게 눈에 띄어준 것도 고맙다. 빨간 우체통 앞에서 가뿐 숨을 가다듬으며 편지를 넣는다. 언제부턴가 편지 쓰기가 부담스러워졌다. 편지지를 꺼내 사각사각 글씨를 써 내려가노라면 내가 보내려는 이의 얼굴과 목소리가 그…

2022.08.03 17:28

징검다리를 건너며

오늘도 아내와 함께 징검다리를 건넜다. 광주천을 산책할 때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서도 징검다리를 놓아준 고마운 사람들을 잊고 살아왔다. 우리 주위에는 징검다리처럼 고마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는 부모 형제, 훌륭한 은사님, 좋은 친구들, 마음씨 고운 사람들은 징검다리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징검…

2022.07.27 15:11

개량종 유감(遺憾)

고향 선운사의 동백은 품위 있는 자태로 내 마음에 들어앉아 있다. 잎이 차지할 수 있는 푸르름의 여백을 한껏 내어주고 최소한의 공간만을 깔끔하게 지켜내는 핏빛의 꽃잎들. 상흔(傷痕) 하나 입지 않은 순결한 몸으로 툭 떨어져 눕는 꽃송이를 받쳐 들고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국화가 누님 같은 꽃이라고 노래했는데, 동…

2022.07.20 18:19

동백꽃과 노랑이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멍멍멍 개 짖는 소리를 겹겹의 꽃잎으로 포갠 듯한 동백꽃이 이쁘다. 입맛 다시며 비린 바람을 발라먹고 햇살까지 한입에 받아먹은 동백꽃이 탐스럽다. ‘노랑아’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쪼르르 달려올 듯 동백꽃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집에서 키운 개 이름이 노…

2022.07.13 17:09

목화를 보며

참 오랜만이다. 얼마 만인가. 손바닥 모양의 가장자리가 톱날 같은 잎을 씩씩하게 뻗고있다.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올 것이고 그 꽃대 끝에선 꽃이 피어날 것이다. 목화(木花)다. 너무 오랜만에 보니 반가움에 눈물이 날 것 같다. 목화는 여러 색의 꽃을 피우는데 이건 무슨 색 꽃으로 필까. 꽃자…

2022.07.06 17:51

어부바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나 식당엘 갔다. 코로나 때문인지 식당이 널널했다. 장사가 안 돼서 식재료가 오래 되었는지 음식이 게미(감칠맛)가 없었다. 갑자기 옆자리에 어린아이가 시끄럽게 울었다. 아이 엄마와 함께 있던 할머니가 손님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아이를 “어부-바!” 하여 포대기에 업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

2022.06.29 16:47

고향의 모내기

풀무치 한 마리가 공중 곡예를 휭- 돌다가 저만치 내려앉는다. 커다란 물 주전자를 들고 낑낑대던 여자아이는 신발을 벗어들고 살금살금 까치발 걸음이다. 어느새 알아차리고 포르르 날아가 버리는 풀무치를 멀거니 올려보다가 시루봉에 걸린 흰 구름의 그림 솜씨에 넋을 잃어버린다. 어머니와 윗말 당숙모는 밥과 반찬 광…

2022.06.23 09:20

다림질

다림질을 하려는데 꽃무늬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 있다. 단추를 달려고 반짇고리를 연다. 잡식성의 바늘은 단추를 먹어 치우며 안과 밖을 잇는다. 바늘은 뜯어지는 속성을 나무라듯 짱짱하게 매듭을 짓는다. 꽃무늬 셔츠에 물을 뿌린다. 옷장에서 오래 묵힌 탓에 꽃들은 목이 칼칼했는지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인다. 소맷부리…

2022.06.15 17:43

내일

전화가 왔다. 아내가 사고를 당했단다. 자전거로 운동을 나갔나 본데 돌아오는 길에 넘어지면서 오른쪽 다리가 네 군데나 골절되된 것이다. 이번 달엔 아내도 나도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당장 입원하고 수술을 받아야 하니 모든 일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아내만 병원에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내 모든 일정 또한 올 스톱 될 …

2022.06.08 18:29

똥돈 줍기

그날은 허탕이었다. 술이 취한 박호 아버지가 변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박아! 니 아부지 똥 좀 누라 해라.” “멍충아! 어찌 쌩똥을 싸라고 하냐?” 우리들은 부질없는 일을 기대한 것이 계면쩍어 그냥 들녘으로 달렸다. 보리가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었다. 풋보리를 한 움큼 쥐어뜯어 손으로 비벼 먹다 맛이 없…

2022.06.01 17:31

감나무 밭에서

헤살헤살 손짓하는 바람 탓이었으리라. 과밀하게 솟은 새순이라도 좀 쳐줄까 싶어 전지가위를 들고 감나무밭으로 나왔다. 옆집 아저씨로부터 일장 연설을 들었건만 정작 나무 앞에만 서면 갈팡질팡 헤맨다. 어린 감나무가 심어진 조그마한 밭쯤이야 문제없이 가꿀 수 있노라고 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치 분재…

2022.05.25 17:34

열쇠

벚꽃이 화사하다. 회색빛의 깡마른 벚나무의 몸 어디에서 봄날이 시작되는 걸까. 무단횡단하듯 봄의 건널목을 건너는 저 꽃빛에 홀려 발걸음을 멈춘다. 수년 전 그때도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옥상 텃밭에서 물을 주고 있는데, 벚나무 가지에서 폭죽처럼 팡팡 터지는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기를 급히 챙겨 들고 공원으…

2022.05.18 09:58

잡초가 된 민들레

예전에 교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이 학생을 ‘잡초’라고 꾸중했다고 자살을 했다. 말썽을 부리던 여학생을 지도하면서 선생님이 실언을 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잡초처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도 학교를 떠났다.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는 교정에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선생님과…

2022.05.11 14:27

5월이면

5월이어서일까. 하늘빛 물빛이 달라졌다. 겨우내 조금은 검다싶던 물빛이 3월 4월을 지나면서 맑아지는 것 같더니 5월이 되자 푸른 산그리메며 초록 이파리 색에 물이라도 들었음인지 맑은 푸른 빛이다. 하늘도 그렇다. 회색빛에 가깝던 것이 점점점점 맑아져 오월이 되니 가을만큼은 아니라도 청명 하늘이다. 산야가 푸르…

2022.05.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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