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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기

요즘 우리 집 장군이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5월 초순부터 슬금슬금 털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온 몸뚱이가 들쑥날쑥 마치 비루먹은 망아지 꼴이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찾아본 자료들에 의하면 진돗개 종류는 봄, 가을로 털갈이를 하며 성견(成犬)으로 접어드는 생후 1년 가까이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2024071701000587300017061#   |    2024.07.17 19:14

양파

주황빛 양파가 동글동글 이쁘다. 설렘으로 발그레 화색이 돈 여인 같다. 양파는 순하고 둥근 성격을 지닌 것 같지만 한 성깔머리 한다. 벗겨지고 손이 닿는 게 싫어서일까. 겹겹의 속내를 매만질수록 눈물까지 흘리게 만드는 매운 향을 지니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순백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매운 염려를 안팎으로 단단히 …

#2024071001000315900008701#   |    2024.07.10 17:29

생신상(生辰床)

99세 이신 장인어른의 생신상을 집에서 차려드리기로 했다. 매년 시골로 내려가 해드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우리 집으로 모시고 싶었다. 몇 번이나 더 생신상을 받으실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 미국에 계시는 고모부가 9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것도 장인어른을 모셔 오게 된…

#2024070301000125600002861#   |    2024.07.03 18:51

사랑하는 마음

봄 햇살이 다사로운 날, 서울에 사는 두 손녀가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를 보더니 춤을 추듯이 달려와 할머니에게 부둥켜 안긴다. 뒤따라온 어멈의 웃음이 봄꽃처럼 화사하다. 곁에서 바라보는 나도 밝고 따뜻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범은 자기 가족을 “아름다운 알찬 봄”이라고 부른다. 한글로 지은 아들 이름 ‘알…

#2024061901000569900017681#   |    2024.06.19 21:29

초하(初夏)의 강가에서

어등골 굽이굽이 유순하게 흘러내리는 황룡강. 꽤 많은 세월 동안 친정 나들이를 할 때마다 설렘으로, 또는 애틋함으로 건너곤 하던 강이다. 여자에게 있어 친정 나들잇길에 만나는 것은 들판의 허수아비도 반가운 법이라는데 하물며 미려한 강산이라니 말해 무엇하리. 송정동 영광통에서 운수동을 지나 서봉마을 앞쯤에 이…

#2024061201000326200010011#   |    2024.06.12 17:45

자루

자루가 길가에 놓여 있다. 힘에 부친 그 무언가를 짊어졌는지, 자루의 등뼈가 굽어 있다. 자루의 직립은 늘 위태롭다. 하루치의 낮과 밤을 눈코 뜰 새 없이 살아내도, 스스로의 등을 꼿꼿이 세우고 살기엔 버겁다. 팽팽히 조여 오는 어둠과 칼끝 겨누는 바람 앞에서 중심 잃지 않기 위해, 자루는 흐물거리는 뼈들을 다시 일…

#2024052901000845400025371#   |    2024.05.30 10:35

목련차(茶)를 마시며

아랫녘의 후배 문인이 목련차라며 보내왔다. 내 목과 코가 좋지 못한 걸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목련꽃이 있을까 의아할 만큼 평상시 보던 목련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꽃이다. 물을 끓여 찻잔에 꽃을 넣고 물을 부으니 금세 은은한 향과 함께 날아갈 듯 목련꽃이 나래를 활짝 펼친다. 나는 목련꽃…

#2024052201000614900018521#   |    2024.05.23 11:14

불멍때리기

어두운 밤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멍때리기를 함께 했다. 불멍은 ‘불을 보며 멍때린다’는 준말로 불타는 모습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것이다. 친구는 불 같은 성질을 고치기 위해 장작불을 태우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아무 잡념 없이 쳐다보며 멍때리기를 한다고 했다. 불멍때리기를 하는데 갑자기 불타…

#2024051501000424300012311#   |    2024.05.15 23:52

차(茶) 만드는 날

4월에서 5월로 가는 길목, 새잎들이 피어나 가장 고운 색으로 윤기를 발하는 계절. 휴일 하루를 비워 정갈한 마음으로 햇차를 만든다. 아침햇살 속에 이슬 머금은 싱싱한 햇순을 조심조심 따는 일로 차 만드는 일은 시작된다. 집 옆 대숲에서 자라는 야생 찻잎을 이용하기에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어쩌다 묵은 잎이 들어가면…

#2024050801000249400006921#   |    2024.05.08 23:37

컵밥의 힘

봄의 문턱에서 지인으로부터 종이컵 크기의 꽃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잎과 꽃이 시들해, 작은 접시의 물받침대에 물을 조금 부어준 후 화분을 올려놓았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꽃잎은 목마름이라는 허물을 밤의 바닥에 벗어놓았는지 생기발랄해졌다. 밤새 꽃은 여린 뿌리로 한 컵의 봄을 푸르게 키웠나. 작은 몸으로 낯선…

#2024050101000053200000771#   |    2024.05.02 10:13

꽃이 되는 풍경

참으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날씨도 좋고 꽃이 허벌나게 핀 4월 중순 미세먼지도 없다는 날이니 좀처럼 만나기 힘든 좋은 날이 분명하다. 봄날의 탄천 변은 그야말로 꽃 잔치다. 하얗고 빨간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눈을 유혹하고 마음을 뺏는다. 일찍 피어 벌써 지기 시작한 꽃잎들은 별인 양 땅으로 지며 은하…

#2024042401000758700022441#   |    2024.04.25 08:31

사랑과 전쟁

유별난 역사는 수천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사랑 때문에 전쟁을 했던 영웅들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트로이 목마와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사랑을 나눴던 클레오파트라가 활약했던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기회를 놓쳐 수십 년이 흐른 지난 3월말 그리스, 튀르키예를 1…

#2024041601000540800015601#   |    2024.04.17 18:55

쑥개떡과 커피

하롱하롱 꽃잎 흩날리는 봄볕 아래서 쑥을 캔다. 이맘때만 되면 봄 쑥 내음 따라 피어오르는 두 얼굴이 자꾸만 봄 동산으로 불러내곤 한다. 순임 언니와 미란 엄마. 윗집에 살던 순임 언니는 가족 다음으로 어린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 5학년 중퇴가 다인 언니는 내가 학교에서 배워온 동요를 불러줄 때…

#2024041001000364300010131#   |    2024.04.10 22:07

아궁이

아궁이에 불을 땐다. 연기로 제 몸을 동여맨 불길이 막막한 내일 같은 아랫목을 뜨끈하게 뎁혀주고 있다. 먹성이 좋은 아궁이는 불 맛이 입에 맞는지 타닥타닥 깨물고 있다. 차갑거나 뜨거운 아랫목의 자세를 결정하는 건 다들 장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불꽃을 피워 올리겠다는 아궁이의 생각이 집중돼야 아랫목…

#2024040301000139300003271#   |    2024.04.03 17:58

오래된 책의 향기

오래된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책을 사니 안 사니, 보니 안 보니 해도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출판된다. 하지만 나오는 새 책만큼 버려지는 책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나는 버릇처럼 버려지는 것들을 살펴보곤 한다. 책이 있나 없나를 보는 것이다. 주로 아이들 책이 대부분이…

#2024032701000827500025761#   |    2024.03.27 17:38

부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부자는 돈에 궁핍하지 않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어 가난한 사람보다 유리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아무나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부자라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소득과 행복지수는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3 한국 부…

#2024032001000612900019221#   |    2024.03.20 17:25

내일을 안고 피는 꽃

전원으로 이사를 한 후 10여 년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이었다. 이사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황량한 텃밭이며 마당이며 장독대며 일감이 산재해있는 집으로 뛰어드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출퇴근에 문제가 없는 도심 속의 전원이었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어등산 줄기와 유유히 흘러가는 황룡…

#2024031301000383000012141#   |    2024.03.13 18:39

낡은 자전거

자전거가 길가 바닥에 넘어져 있다. 거칠고 납작한 오후의 숨이 할 말이 많다는 듯 안장에 붙어 있다. 그동안 달빛과 파도 소리 흘리며 달려왔던 길의 경사가 심해 길 멀미를 한 것일까. 토사물 같은 녹슨 자국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생의 둥근 표정 같은 두 바퀴는 위태로웠던 오르막과 내리막을 벗어놓고 숨을 고르고 …

#2024030501000115900004001#   |    2024.03.06 23:45

봄소식

봄이란다. 봄은 겨울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생명이 태동한다는 희망으로 부푼 계절이다. 한데 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요즘은 비교적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인데도 지구온난화로 언제부턴가 봄과 가을이 실종되어 버렸다고들 말한다. 달력상으로 절기를 나누자면 3월부터 5월이 봄이다. 하지만 절기상으론 입…

#2024022801000848300024931#   |    2024.02.28 18:02

돌탑의 허상

어떤 등산객이 산행을 하다가 갑자기 똥이 마려워 길가에 똥을 쌌다.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보기에 안 좋아 주위에 돌을 몇 개 모아 덮어 놓았다. 그 후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돌 위에다 돌을 얹어 돌무더기가 됐다. 어느 날 누군가가 돌무더기 둘레에 큰 돌로 받침돌을 세우고 돌탑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다. 세…

#2024022101000636500018341#   |    2024.02.21 20:34

머리를 빗으며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을 때마다 슬슬 겁이 난다. 흰머리가 솟는 것이야 세월과 함께 당연한 순리이지만, 날이 갈수록 성글어지는 머리숱을 바라볼 때면 난감함과 함께 처량한 생각까지 든다. 한 올이라도 아껴보고자 조심조심 빗질을 해보지만 가을 낙엽 지듯 스르륵 스르륵 흘러내리면 가슴까지 섬뜩해진다. 추운 겨울…

#2024021401000385800011051#   |    2024.02.14 19:03

코뚜레

수십 년 전에 즉흥시 인터넷 사이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어느 누가 사이트에 글감을 던지면 말랑말랑한 시의 표정과 안색을 나열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어 너도 나도 즉흥시를 올렸다. 어느 새 이 재미에 빠져 든 나는 날마다 즉흥시에 꼬뚜레를 꿰었다. 늦은 밤에 글감을 툭 던지는 사람도 있어 무거운 쟁기 같은 한밤…

#2024020701000242900006451#   |    2024.02.08 10:51

마지막의 의미

여권 유효기간이 끝나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그런데 여권을 받아 드는 마음이 참 착잡해졌다. 문득 이 여권이 내게는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신청서를 쓸 때도 약간의 그런 심란한 갈등이 있었다. 5년으로 할까 10년으로 할까. 그러다가 10년으로 했다. 10년이면 2034년이다. 그때까지 내가 살 수 있을까. 아…

#2024013101000989200030561#   |    2024.02.01 10:05

청룡의 해와 12지간

양력 1월 1일 새해가 되자 신문과 방송에서는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양력 1월 1일은 계묘년이다. 갑진년은 음력 1월 1일인 2024년 2월 10일이다. 12지간도 모르는 사람들이 청룡의 해라고 떠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2024년이 청룡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한자문화권으로 조…

2024.01.24 18:18

꿈을 꾸는 창(窓)

늦은 밤이면 남쪽으로 난 창문 앞에 자주 서 있곤 한다. 그곳은 앞 동네 아파트 사람들의 밤 정경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밤하늘과 들판, 그리고 사람 사는 곳의 화려한 불빛들이 어우러지는 공간은 가히 황금 분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조화로운 야경이다. 그곳에만 서면 왠지 별이 보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2024011701000560300016961#   |    2024.01.18 09:38

마른 오징어

파도를 벗고 바람을 껴입은 오징어를 수납장에서 꺼낸다. 하얀 가루에 제 아픔을 숨기며 얼마나 많은 상처를 억누르고 눌러왔으면 저리 바짝 말라 있는 것일까. 배를 가르는 어느 아낙의 손끝에서 바다의 시간은 버려졌지만, 아픔을 기억하는 등뼈는 아직도 단단하다. 막무가내와 어지러움을 켠 집어등 불빛을 만나기 전에는…

#2024011001000198200006111#   |    2024.01.10 18:18

마음에 남는 것

자금껏 살아오면서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아이들과 제대로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잠깐씩 가는 여행이야 자주 했지만 며칠씩 같이 하는 여행은 못 했었다. 특히 두 아이의 아빠로 마흔이 넘어버린 아들과는 속내를 느끼고 나눌 만큼 며칠 함께하는 여행을 못 한 게 여직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린 어느 날 아이는 제…

#2024010301000099600003021#   |    2024.01.03 18:53

노파와 낙타

진눈깨비가 내리는 어두운 저녁에 시장 골목에서 낙타처럼 등이 굽은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니 어떤 노파가 폐지를 모으는 중이었다. 리어카에는 종이박스와 폐품들이 너저분하게 실려 있었다. 땅거미가 저문 늦게까지 리어카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짠해 보였다. 10여 년 전…

#2023122701000852700024371#   |    2023.12.27 17:03

나의 ‘비밀의 화원’

내게는 틈이 날 때마다 드나들곤 하는 장소가 하나 있다. 제비꽃 아장거리는 볕 좋은 봄날 점심을 먹다가도, 연잎에 후두둑 소나기 듣는 한여름 오후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도, 억새 소리 서걱대는 늦가을 저물녘 둥지를 향해 날아드는 새 떼들을 바라보다가도, 입은 차림 그대로 마실 돌 듯 머물다가 오는 곳, 어등산 숲속의…

#2023122001000698400019501#   |    2023.12.20 22:25

선풍기

나와 삼십 년 넘게 동고동락하다 보니 선풍기는 이곳저곳이 망가져 있다. 선풍기를 튼다. 미풍이라는 푸른 갈기를 휘날리며 선풍기는 따그락 따그락 말발굽 소리를 내면서 달리고 있다. 내 방에서만 사는 선풍기라는 저 푸른 말은 낭만이라는 초원으로 들어가는 법을 찾지 못해 말말뚝처럼 단단한 바닥에 매여 있다. 낭만의…

#2023121301000443300011901#   |    2023.12.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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