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은 문학박사·화가·전 전남대 교수

2022년 03월 16일(수) 18:08
나무 식탁을 수십 년째 쓰고 있다. 어느 날 식탁 상판의 옆면에 작은 틈이 생기더니 쩍쩍 벌어져 갈라지기 시작했다. 새로 살까 고민하다가 못질 몇 번 하면 다시 짱짱해질 것 같아서, 상판을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고 탕, 탕, 탕 못을 박는다. 세상의 모든 무너짐은 작은 틈에서 시작했으니, 정신 바짝 차리라며 탕! 틈으로 드나드는 온갖 유혹과 허세를 빼야 한다며 탕, 탕! 가장 위험한 못이 제일 아름답게 생의 불꽃을 꽃피울 수 있다며 탕, 탕, 탕! 그 망치질 소리에 내 가슴에 박힌 못 하나가 깨어났다.

아버지는 법학과로 대학 진학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끝까지 국문과를 고집했다. 아버지는 굶어 죽는다는 굶음과에 가면 입학금 외에는 일체 지원해 주지 않겠다고 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온 낭만이라는 유혹을 지워야 먹고 살 수 있다며 내 가슴에 못을 박았다. 아버지는 문학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던 스무 살에게 수시로 못을 박았다. 대학 생활 내내 아픔의 속살 파고드는 못의 끝은 날카로웠고, 나는 급소가 찔린 듯 자지러지게 아파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수시로 못대가리를 다시 내리쳐서 서러움을 견뎌야 했다. 붉고 푸르게 녹슨 날들이 많았지만, 나는 가슴에 박힌 못을 빼지 않고 알바를 하며 모든 비용을 마련했다. 하지만 빠듯한 돈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낡고 닳아진 비닐구두를 계속 신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비가 온 날 아침에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길을 걷는데 비닐구두의 구멍난 뒷굽으로 빗물이 계속 들어와 찌그럭쩌그럭 창피한 소리가 났다. 그날따라 유난히 소리가 크게 들렸다. 길에서 같은 과에 다니는 여학생을 만났다. 그 소리를 그녀가 들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구부러진 못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며 걸었다. 빗줄기는 아픔의 못을 더 깊숙이 박아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빗소리가 불러온 낭만과 운치는 귓바퀴에서 녹이 슬고, 나는 쇳독이 오른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낡은 비닐구두를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신고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못대가리가 헐도록 내리치는 창피함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다. 하루는 아버지를 모시고 식당에 갔다. 그곳에서 가까스로 가슴에 박힌 못을 꺼내 물어봤다.

“대학 다닐 때 용돈 한 번 주지 않고 왜 그렇게 저를 모질게 대하셨어요?”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벽을 때리는 못질 소리에 놀란 듯 나의 눈길을 피했다. 미안해서일까,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녹슨 못을 꺼내 들여다보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들이 이렇게 반듯이 컸잖아.”

아버지의 눈가가 붉어졌다. 아버지의 가슴에도 못이 박혀 있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버지와 나의 위태로웠던 그 시절이 서로의 못에 찔리면서 세월에 녹슬어 갔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바닥에 뒤집어 놓은 식탁 상판에 마지막 못을 박는다. 저 못은 나무의 깊은 상처를 건드리며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못 끝에서 확장되는 아픔을 견디며 제 상처를 끌어안을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얽히고설킨 못질 소리에도 아프게 자리매김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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