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현대미술에세이-질문과 대답<13>하정웅 기증 관련 논란

무지 깨고 진정한 가치 알아봐야 예술의 도시
하정웅 선생, 방대한 중요 작품들 광주에 기증
특별한 의미 갖는 기증엔 그에 맞는 대우 마땅
일반적 룰 맞춰 기증 가치·의미 평가할 수 없어

2020년 06월 25일(목) 11:26
전화황 작 ‘전쟁의 낙오자’.(1960) 전후 일본에서의 피폐된 삶을 리얼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하정웅과 전화황. 하정웅은 재일 한국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경우가 전화황이다. 전화황의 작품은 특유의 한과 기원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2018년 9월 19일 광주 KBS 뉴스에서는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기증 관련 계약, 기증자 예우 등을 문제 삼는 내용을 보도했다. 같은 시간대의 뉴스에 연속해서, 작정한 듯 하정웅을 때리는 중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는 이에 동조하는 또는 하정웅의 남다른 기증의 가치를 존중하는 글이 올라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정웅은 광주광역시청의 간절한 요구에 응해 기증을 시작했고, 그 기증의 예상을 넘는 것이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홈페이지에는 하정웅의 기증 관련 글을 이렇게 올리고 있다.

‘특히 광주시립미술관에는 1993년 미술작품 212점 기증을 시작으로 1999년 471점, 2003년 1,182점, 2010년 357점, 2012년 80점, 2014년 221점 등 총 2,523점을 기증하였습니다. 광주시립미술관 기증작품 중에는 전화황, 이우환, 곽덕준, 곽인식, 문승근, 손아유 등 주요 재일작가의 작품과 피카소, 샤갈, 달리, 루오, 앤디 워홀, 호안 미로, 벤 샨 등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 및 박서보, 김창열, 오승윤, 홍성담 등 우리나라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증의 내용은 그 양도 놀랍거니와 내용 면에서도 재일작가들의 중요 작품과 국내외 작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망라되어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로써 광주시립미술관은 재일작가의 가장 빼어난 작품들을 수장하는 특징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국내외의 중요 작품들을 갖춘 경쟁력 있는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형태로 하정웅미술관이 존재하며, 하정웅의 요청으로 청년작가초대전 ‘빛’전이 지속 중이다. 또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라는 타이틀과 미술관 인근의 도로에 ‘하정웅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다른 기증자와의 형평성 또는 일반적 기증 관련 계약에 비춰봤을 때에 기증자 하정웅에 대한 대우는 특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를 갖는 기증은 거기에 맞는 계약, 대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규방송 뉴스를 통해 연속적으로 때리는 문제에 대해 하정웅 당사자는 속앓이를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의연하게 대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이 생명처럼 아끼는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광주에 바친 그는 광주발 뉴스에서 불공정 계약, 불공정 대우라는 이름으로 연타를 당했다. 어찌 하겠는가? 정의도 일반적 정의는 무의미한 것을…. 일반적 룰에 맞춰서 기증의 가치와 의미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을 왜 모르는가?

가와모토 전기상사 시절의 하정웅. 당시 도쿄 올림픽과 재일교포 사회의 신임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95년 첫 광주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나는 일본을 방문했다. 아시아 현대 수묵 작가를 섭외 차 순방 중이었다. 나는 미리 하정웅 선생께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도쿄에서 일을 잘 치르고 교토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도 기꺼이 동행케 되었다. 당시 나는 아시아권을 돌면서 현대 수묵 관련 자료를 두 개의 큰 가방에 넣어 운반 중이었다.

교토로 가는 신칸센을 타느라 몇 번의 계단을 넘어 힘들어하는 나를 도우려 가방 하나를 거들어 주면서 “장 선생은 천상 교수 밖에 못하겠어요. 노동으로 하는 일은 안되겠어요” 하신다.

가까스로 열차를 타고 내가 그의 어투를 빌려 “도쿄에 오니 못 살겠어요” 하자 그는 “그 무거운 짐을 돈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럼 행복하지 않아요? 무거울 수록 행복하지 않아요?” 하신다.

과연 그는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해 가난을 물리치고 좋아하는 그림을 샀고 1만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국내 여러 미술관에 기증했다. 고국을 잊고 있다가 부모님 때문에 고향 방문을 시작으로 메세나 운동과 작품 기증 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5년 전북도립미술관 재직 시 아시아현대미술을 펼칠 때 그는 미술관을 방문하여 말하기를 “이 미술관은 장 선생을 기다려 온 듯 합니다. 축하합니다”라고 말했고, 귀국 후에는 문승근의 판화 6점을 보내왔다. 그것도 작품이 도착한 이후에 전화를 걸어와 그 의미를 알렸다.

하정웅 선생의 기증 이면에는 예술과 조국에 대한 사랑,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인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등이 깔려 있다. 단순히 물량적인 기증보다 그 이면에 담긴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진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유난히 재주가 있었던 그는 고등학교 때 미술 교사의 관심과 지도로 재능을 뽐내게 되지만, 가난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게 된다. 어머니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가 그린 그림들을 찢어버리고, 화구들을 푸른 강물에 던져 버렸다.

가장 좋아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도쿄 전람회를 보기 위해 ‘아파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고3 졸업여행을 취소하고 반환받은 비용으로 우에노행 야간열차를 타고 기뻐했던 소년 하정웅은 JR오우본선의 증기기관차는 그의 청춘의 고동 그 자체였다고 서술한 바 있다.

가와모토 전기상사 시절의 하정웅. 당시 도쿄 올림픽과 재일교포 사회의 신임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은 한 바탕 꿈과 같다. 하정웅은 사업으로 성공하여 미술품 수집 등으로 꿈을 이뤘지만, 자신의 꿈을 담보하는 예술 작품들을 고국에 기증해 왔다. 그것은 계약 조건 같은 차원을 넘어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조국에 바친 모습이었다. 포퓰리즘이 유행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문화예술계의 정경은 예술의 진정한 가치나 그 의미에 대하여 둔감하다. 뭐든 평등이라는 관점으로 균등하게 보려는 정제되지 못한 자세를 취하기 일쑤다.

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에 눈뜨지 못한 자들의 헛소리에 대하여 방송도, 여론도 제대로 판가름하지 못한다. 마치 세련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관심 속에서, 자살로 몰고 갔던 고흐의 삶처럼 그것은 대중적 무지를 드러낸다.

언제나 시대는 유사하다. 그러나 그러한 무지를 깨고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고 그 힘을 북돋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예술의 도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ACC 열 개를 짓는 일보다 위대한 힘이 될 것이다.

/장석원(미술평론가)
/장석원(미술평론가)
이 기사는 전남매일[jndn.com] 홈페이지(http://www.jndn.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jsnews00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