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현대미술 에세이-질문과 대답<5> 새로운 세대의 등장, 하루.K

과감하고 극단적인 작가의 길 걷는 세대들
광주 상징 무등산에 신세대 색깔 입혀 재구성
소비적 취향 한국인 시각 ‘음식 산수’에 녹여
전통과 권위에 도전…정체된 전통산수 출구 제시

2020년 02월 27일(목) 09:48
하루.K의 대작 ‘Rainbow Moodeung Mountain‘, 227x900cm, 2019. 무등산 자락에 오색찬란한 이불을 덮은 듯한 느낌의 신세대 시각으로 본 산수화이다.
현란한 이불을 뒤집어 쓴 듯, 기이하게 다가오는 무등산 대작을 보면서 나는 ‘하루.K’라는 작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작품의 명제 역시 ‘Rainbow Moodeung Mountain‘이다. 작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등산 형태 안에 자신이 원하는 바의 오색찬란한 색깔을 입혔다. 광주의 상징적 존재의 무등산을 신세대의 젊은 감각으로 과감하게 재구성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정웅미술관의 2019 청년작가초대전의 주인공 하루.K 이야기다. 작가는 전시 타이틀도 ‘와신짬뽕’이라고 정했다. 굳이 의미를 따지자면, ‘바뀔 와, 나아갈 신’의 한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라고 하지만 여전히 엽기적으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전통적 산수의 틀에 음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음식 산수’라는 장르를 개척해낸 그의 그림은 언제나 주목을 끌어왔다. 전통 산수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에 젊은이들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인지하는 방식을 적극 도입하여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하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변명이다.

아닌게 아니라 전통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진부하고 지루해 보인다. 유교적 이상향을 추구했던 남종화에서 보여주는 자연은 현실과 동떨어진 바의, 고결하고 탈속적인 의취를 강조해왔다.

아마도 하루. K가 그린 무등산은 전면적으로 남종화가 보여 왔던 자연관에 대한 강한 부정임과 동시에 자신만의 칼라로 무등산을 마음대로 주물러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젊은 작가가 부릴 만한 호기가 느껴진다.

‘편집된 산수’. 산수도 족자 위에 3D로 출력한 산과 나무, 구름 등을 설치한 작품. 가상의 가상성이 중첩되는, SNS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을 듯한 작품이다.
본인이 직접 스케치하고 머물렀던 산수풍경을 음식을 담는 접시, 도시락, 대접 등의 공간에 마치 음식처럼 산수를 담는다는 발상은 기이하고 또 흥미롭다. 사실 먹는 문제와 산수 개념은 늘 별개였다. 먹는다는 것은 고고한 자연의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산수화의 세계에서는 배제되어온 문제였다. 그러나 바쁜 일상을 살면서 어디서나 소비적 성향을 보이는 현대인에게는 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곁으로 가면서도 언제나 무엇을 먹을까를 궁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가 그린 ‘맛있는 산수’나 ‘편집된 산수’에는 소비적 취향의 현대 한국인의 시각이 녹여져 있다. 그래서 정통적 산수에 대한 안티테제로 강하게 작용된다. 역설적으로 보면 전통 산수가 고답적인 정체 상태를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작가의 근작 ‘그림 속 그림(까치와 호랑이)’는 음식 대신에 민화, 전통 가구, 분재 등이 산수와 함께 어우러지며 그림 속에 민화에 들어 있는 까치와 호랑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중첩된 가상성을 보여 흥미롭다. 그는 SNS 세대로서 가상의 세계가 실제보다 더 실효적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그가 이 전시를 위해 선보인 긴 산수 족자 아래 자락에 실제 바위와 운무, 나무, 음식 등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결합시킨 작품은 가상의 가상성이라는 중첩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면모를 보인다. 그는 가상성이 갖는 환상과 소비적 자극성, 그리고 리얼리티를 혼돈시키는 또 다른 리얼리티를 의식하고 있다. 영리한 신세대 감각을 구사한다.

‘회피의 기술’. 디지털 프린트로 보여주는 대화 ‘너 어제 뭐했어!!’에 ‘꽃들이 참 예쁘다. 너처럼~~~~’의 대꾸가 동문서답인 채, 출력된 산수 위에서의 새로운 산중문답이다.
그가 제시한 ‘편집된 산수’에 등장하는 입체물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산수, 인물, 음식 등을 다시 3D 프린터로 입체화시킨 것들이다. 말 그대로 가상의 가상성이라는 중첩이 실감되고, 그림 속 존재와 입체로 둔갑된 존재 사이에는 미묘한 느낌이 개입된다.

그는 디지털 프린트로 뽑은 산수 사진과 3D 입체물들을 결합시킨다. 그 사이에 ‘너 어제 뭐했어!!’, ‘꽃들이 참 예쁘다. 너처럼~~~~’ 등과 같은 SNS 대화 같은 말들이 삽입되기도 한다. 사실 젊은 세대의 생활 감각에는 중첩된 가상성이 더 일상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한번 이 길로 들어선 이 세대의 작가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어쩌면 더 극단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그린 무등산 대작은 어디까지나 회화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자신다운 방법으로 상징성이 강한 무등산을 다룬 대표작일 수 있다. 단, 그동안 해온 음식 산수 개념과 동떨어져 보이지만, 가상성을 극대화 시키면서 동시에 ‘광주’를 느끼게 할 수 있는 작가의 의도가 전달된다.

그는 이미 자신이 창출하고 길게 지속하고 있는 가상성에 익숙하고,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도약하고자 하는 의욕을 품고 있다. 소재 면에서의 ‘음식 산수’라는 틀에 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작가의 근작 ‘그림 속 그림(까치와 호랑이)’. 음식 대신에 민화, 전통 가구, 분재 등이 산수와 함께 어우러지며 그림 속에 민화에 들어 있는 까치와 호랑이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중첩된 가상성을 보여 흥미롭다.
전통적 시각에서는 이 문제를 너그럽게 봐야 한다. 전통이 새로운 창출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출구는 많지만, 과연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스스로에 대한 반문과 함께 전통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더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해방 후 이 땅에 세워진 국전 및 도전 같은 공모전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던 권위 체계 역시 새로운 세대의 흐름에 관심을 갖고 격려를 해야 한다. 국제화 시대를 겪으면서 지역적, 제도적 권위는 무의미해졌다. 새로운 세대들은 각기의 길을 노정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길 없는 길, 제도가 보장해주지 않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점에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청신한 면이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세대, 외줄타기 같은 그 길 밖에 없는 갈 수 밖에 없는 세대의 등장이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이후 하루.K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상당 수 등장하고 있다. 주어진 제도적 틀에 매여서는 살아날 수 없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과감하고 극단적인 작가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세대의 등장, 그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장석원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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