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의료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났고, 의대생 역시 집단 휴학으로 수업을 거부하며 ‘증원 백지화’라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나 미봉책에 그칠 뿐, 전공의 빈 자리를 메운 의료진들의 희생만 강요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의사 양성에도 차질이 생기면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일수록 의료 시스템의 연쇄적 붕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역 의료 실태와 앞으로 직면하게 될 문제 등에 대해 총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전문의 자격’을 얻기까지 최소 11년 이상 걸리는 의사 인력 양성 시스템이 의정 갈등으로 인해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될 경우 당장 내년부터 신규 의사 배출과 전문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져 의료체계 전반에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중보건의 대신 현역병 입대가 늘어나게 된다면 농어촌 등 의료취약지역의 보건 인프라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8일 지역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역 대학병원은 그동안 전공의에 의존했던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지난 5일 진료 전담의 채용 재공고를 냈고, 이달 30일까지 마취통증의학과·응급의학과·내과·산부인과 등 7개과에서 총 30명을 모집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앞서 전공의(레지던트) 244명 중 225명의 사직서를 처리하고 비상진료체계 장기화에 따른 대책 차원에서 전임의 중심 체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진료 전담의는 의사 면허 취득자 중 레지던트 1년 차 이상 자격만 되면 지원할 수 있는데, 지난달 첫 공고에서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어 전문의 중심 인적 구조 개선 대책이 수포로 돌아갔다.

조선대병원도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비상진료체계를 운영 중이며,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위해 PA 간호사 지원자 모집과 전문의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진료보조인력인 PA 간호사는 현재 160여명으로, 전공의 집단 사직 전(80명)과 비교해 2배 가량 늘었다.

조선대병원은 전공의 사직 처리를 보류해오다가 지난달 전공의 114명 중 108명에 대한 사직 처리를 완료했다.

의료계에서는 의정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6년제 의대 졸업→의사 면허 취득→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전문의 자격 취득’으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 체계에 연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전공의는 특정 과목의 전문의가 되고자 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로,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4년 과정을 모두 마치고 시험에 통과해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공의가 지난 2월 20일을 전후해 현장을 이탈한 만큼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앞둔 레지던트 3·4년 차는 2025년이 아닌 2026년 초가 돼야 전문의 시험을 볼 수 있다. 수련 도중 사직한 전공의들 역시 ‘일 년 내 동일 과목과 연차’에 복귀할 수 없다.

전남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내년에 병원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사직 시점을 2월로 했기 때문에 내년 3월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다만, 하반기 전공의 추가 모집 기간 지원자가 없어 충원이 어려웠던 만큼 의정갈등이 내년까지 계속된다면 전공의 충원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비 의사인 의대생도 의사 국가시험에 응시하지 않거나 집단 휴학으로 수업을 거부하고 있어 신규 인턴 등 전공의 배출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남대 의대의 경우 올 2학기 등록 인원이 87명에 그쳤고, 집단 휴학에 동참한 의대생은 1학기(536명)보다 115명이 늘어난 651명으로 나타났다.

의대 증원 발표 이후 군의관과 공보의를 포기하고 현역병으로 군 입대를 선택한 의대생도 지난해 4명에서 올해 46명으로 급증했다.

1학기가 진행 중인 조선대 의대 역시 재적 학생 중 약 2.5%만 온라인 수업과 실습에 참여 중이며, 집단 휴학에는 의대 전체 재적생(749명) 중 593명이 동참하고 있다. 2학기 개강일은 다음 달 7일로, 조선대는 의대생들의 복귀가 불투명한 만큼 등록금 납부 기간 연장을 검토하기로 했다.

2학기에도 수업 거부가 이어질 경우 ‘대규모 유급 사태’가 불가피하며, 현역으로 입대할 경우 군대와 농어촌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군의관과 공보의 신규 인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선대 관계자는 “내년 초 의대생들이 한꺼번에 복귀·입학하게 될 경우 큰 혼란이 예견되며 분반 편성 등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내년에 증원된 의대 신입생을 포함한다면 의예과 1학년의 경우 총 275명이 수업을 듣게 될 것이고, 이를 대비해 대학본부와 논의를 거쳐 교수 추가 채용 등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시의사회 관계자는 “현재 전공의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의대 증원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려로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며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의료 시스템 전반에 연쇄적인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보의와 군의관을 응급실에 배치하는 정부의 대응은 지역 의료 체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치다”며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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